[신년대담]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역대 가장 무능한 정부다. 2017년은 우리 현대사에서 제일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다."
깊은 장탄식부터 쏟아졌다.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에서 만난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다"고 2017년을 정의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근심이 가득했고 중간 중간 탄식을 쏟아내기도 했다.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2017년 경제성장률이 2%대에 근접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유일호 경제팀은 다음 정부에 대과없이 넘겨주도록 '경제안정'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우리 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현장 해결사로 나섰던 윤 전 장관이 올 한해를 '현대사에서 제일 힘든 한 해'로 예상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윤 전 장관은 "외환위기 당시, 국내 부채는 과다상태였지만 국제 상황은 괜찮았다"며 "지금은 우리만 어려운 게 아니라 대외경제가 더 악화돼있다"고 크게 우려했다. 그는 "미국을 제외하면 2008년 금융위기에서 복원된 나라가 없고, 미국마저도 트럼프의 등장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조되고 있다"며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대내환경이다. 윤 전 장관은 "더 설명이 필요 없다"고 거듭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경제는 진공 속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고, 특히 정치 환경에서 무한영향을 받는다"며 "국정공백, 탄핵사태에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반문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탄핵정국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수출이 막히면 내수라도 살아야 하는데 소비와 투자까지 꽉 막힌, 그야말로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다는 게 그의 걱정이다.
윤 전 장관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정부 전망치인 2.6%는 물론, 2.0%대 달성조차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와 한국은행(2.8%), 현대경제연구원(2.3%), 한국경제연구원(2.1%) 등을 하회하는 수준이다.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이한 박근혜정부에 대해서는 "역대 제일 무능한 정부"라고 거침없이 쓴 소리를 쏟아냈다.
윤 전 장관은 "김영란법만 해도 전 국민의 생활규범을 바꾸는 엄청난 법을 만들면서도 사전 준비, 스터디 사례 분석의 노력 등이 전혀 없었다"며 "어려울 때는 위기돌파형, 평화로울 때는 관리형을 앉혀야 하는데, 경제 뿐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그런 인사를 못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국정과제로 내세웠던 4대 구조개혁은 밑그림조차 보이지 않았고, 출범 후 가장 먼저 추진됐어야 할 산업 구조조정은 순서와 목적, 전략이 모두 잘못되며 결국 "아까운 해운사만 날렸다"는 게 그의 평가다.
윤 전 장관은 "조선, 해운산업(의 위기론)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정부 출범 당시,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경기를 살리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박근혜정부는 안중에도 없었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구조조정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공급과잉 업종을 어떻게 구조조정할 것인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산업재편의 밑그림이 먼저 나와야 하고, 부총리가 큰 그림차원에서 조정해야 한다"며 "이후 인력ㆍ실업문제 등 고용노동부 관련, 그 다음이 유동성, 자금 등 금융개혁"이라고 순서를 설명했다. 이어 "이렇게 나가야 하는데 앞부분이 다 빠지고 4대개혁, 금융개혁을 하면 되겠느냐"고 "그러니 아까운 해운사만 날린 것"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기업에 대한 쓴소리도 빼먹지 않았다. 그는 "국제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업종에 최고경영자(CEO) 자리가 비었을 때, 전문성과 노하우가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할 일에 어제까지 살림하던 사람이 나왔다"며 "과연 제대로 된 경영이 되고, 회사 내에서 (CEO에게) 직언하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윤 전 장관은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현 탄핵정국에 대해 "이런 문제를 야기한 대통령이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 책임으로 자유스러울 수 없다"고 탄식을 내뱉었다.
그는 "집중된 권력을 견제하는, 그 많은 장치가 작동되지 못했다"며 "공직자, 국회, 언론은 물론 3∼4년이라는 상당한 시간동안 연루된 사람들로부터도 내부고발 등도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번 기회가 대개혁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유일호 경제팀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관리에 중심을 둘 것"을 제언했다. 윤 전 장관은 "지금 무슨 개혁이 가능하겠냐"며 "다음 정부에 대과없이 넘겨주도록 관리차원에서 경제안정 등에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부양이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최소한 경기가 유지될 수 있도록 재정 조기집행에 힘 쏟아야 한다"며 "국민들이 불안하지 않게끔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수습 등도 이와 맥락을 함께 한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과 관련해서는 '딜레마'라고 언급했다. 그는 "과도 정부에서 추경을 하기엔 타이밍이 늦다"며 "예산 조기집행으로 공백을 메우고, 하반기 이후 새 정부가 추경을 검토하는 식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누구=윤증현 전 장관은 행정고시 10회로 공직에 입문한 정통 경제관료이자, 위기 극복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으로 일하던 1997년 당시 외환위기에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나, 참여정부에 금융감독위원장으로서 카드사태 돌파에 앞장섰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터진 이후에는 경제사령탑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아 위기 극복을 이끌었다. 후배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원칙주의자, 선이 굵은 큰형님으로 평가된다. 현재는 서울 여의도에 자신의 성을 딴 '윤(尹)경제연구소'를 열고 경제현안에 대한 연구와 제언에 힘쓰고 있다. 1946년 경남 마산출생, 서울고ㆍ서울대 법학ㆍ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교 행정학(석사)
대담=이의철 금융부장
정리=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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