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승자에게 허니문은 없다‥사회통합 무거운 숙제 안고 출발해야하는 처지

8일(현지시간) 오전 11시쯤 뉴욕 맨해튼의 공립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 중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아내인 멜라니아 트럼프의 투표용지를 쳐다보고 있다. (사진출처=AP)

8일(현지시간) 오전 11시쯤 뉴욕 맨해튼의 공립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 중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아내인 멜라니아 트럼프의 투표용지를 쳐다보고 있다. (사진출처=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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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 김근철 특파원] 8일(현지시간) 끝난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전은 역대 선거 중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선거 운동도 지난해 초부터 시작되는 바람에 이례적으로 길었다.

치열하고 길었던 선거였던 만큼 승자의 기쁨은 더욱 클 법하다. 그러나 미국 정가와 언론들은 일찌감치 "힐러리 클린턴이 됐든, 도널드 트럼프가 됐든 이번 대선의 승자가 누릴 기쁨은 잠시가 될 것"이라고 예측해 왔다. 그만큼 대통령 당선자가 짊어져야 할 과제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무겁고 해법도 어려울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이번 선거를 치르는 동안 미국 사회의 모순과 양극화의 민낯은 그대로 드러났고 선거 과정에서 더욱 심화됐다. 특히 최근 금융위기와 미국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 속에 높은 실업률과 상대적 박탈감에 노출된 백인 저소득층의 반발은 분노라는 형태로 여과 없이 분출됐다.

극심한 양극화 상황에서 상당수 미국의 유권자는 워싱턴DC로 대변되는 정가와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금융가에 등을 돌렸다. 이는 아웃사이더로 출발한 공화당 트럼프 돌풍의 자양분이 됐다. 여기에 트럼프는 멕시코 등 불법 이민자와 중국 등과의 세계 무역 체제가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워 증오를 부추겼다.
오바마 부부와 클린턴 가족이 7일(현지시간) 마지막 합동 유세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오바마 부부와 클린턴 가족이 7일(현지시간) 마지막 합동 유세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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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서부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의 백인 노동자들은 트럼프의 막말과 온갖 기행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들은 "기득권을 누려 온 클린턴을 감옥에 보내겠다" "워싱턴DC의 썩은 물을 당장 뽑아내겠다"는 트럼프의 연설에 열광하며 환호를 보냈다.

반면 전통적인 민주당과 클린턴 지지 진영은 이른바 '트럼피즘(Trumpism)'을 '미국의 수치'라며 치를 떨었다. 트럼프로부터 성범죄자나 전과자 취급을 받은 히스패닉계의 일부 주거지에선 트럼프 인형의 목에 밧줄을 걸어 놓은 장면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을 정도였다.

클린턴이든, 트럼프든 어느 쪽이 대선에서 이겨도 반쪽짜리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CNN은 이날 오전 '분열된 미국 사회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를 두고 전문가 대담을 긴급 편성해 방송하기도 했다. 민주당 후보 클린턴이 선거 운동 마지막 날인 지난 7일 연설에서 "분노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나는 나를 반대한 유권자들까지 함께 아우르는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당장 선거 결과 불복 논란이 점화될 수 있다. 트럼프는 이미 자신이 패배한 선거 결과는 조작된 것이라며 선거 불복의 문호를 열어뒀다. 실제로 사회여론조사 기관 퓨 리서치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층 중 48%만이 '패자의 대선 결과 승복이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나머지는 쉽게 패배를 승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정치권 상황도 여의치 않다. 대선이 끝나면 미국 의회는 차기 대통령에 경의를 표하고, 그의 의견을 일단 경청하는 이른바 '허니문' 기간을 갖는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허니문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다. 공화당 지도부는 일찌감치 클린턴이 대선에 승리하더라도 그에 대한 즉각적인 견제에 나설 것임을 예고해 둔 상태다.

공화당의 원내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최근 클린턴에게 '백지수표'를 주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공화당 경선에 나섰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공석 중인 대법관 인준을 서둘 필요가 없다"고 공언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3월 타계한 보수파 거두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 후임으로 중도성향의 메릭 갈런드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장을 지명했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여전히 인준이 표류되고 있다.

민주당은 클린턴을 앞세워 신속히 대법관 공석 사태를 해소하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공화당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은 "진흙탕 선거 이후 승자에게 정치 상황은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심각한 후유증을 우려했다. 상처뿐인 영광을 안고 출발하는 대통령 당선자가 극도로 분열된 미국의 통합을 위해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뉴욕 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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