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씨 깐 '스폰서 검사'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대체 어떻게 이 정도로 구조적인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존재하는지, 우리도 잘 모를 지경입니다."

지난해 10월 김형준 당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47ㆍ부장검사ㆍ사법연수원 25기)은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세조종꾼들과 손잡고 주가를 조작한 혐의 등으로 유력 기업인들을 사법처리한 직후였다.

'금융통'으로 손꼽히며 업계의 취약한 도덕성을 질타하던 그가 '스폰서 검사' 논란의 장본인으로 전락했다.

고등학교 동창과 부적절한 스폰서 관계를 맺은 그는 논란이 불거지자 증거은폐 시도를 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이런 정황은 6일 언론에 공개된 김 부장검사와 동창 김모씨 사이의 지난 7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 부장검사는 김씨에게 "꼭 부탁이니 집 사무실 점검하고 지금 휴대폰 버리고"라고 당부하고 "꼭 살아남자"라고 말했다.

김 부장검사는 또 "(수사기관의) 전략에 밀릴 수 있다"면서 조사를 받을 경우 어떻게 진술해야 하는지를 조언했다.

"여자 미리 사진 보내주고 정해서 술마시는 집이다 이런거 니가 이야기 했으면 나랑 그렇게 마신 걸로 몰아갈 수도 있어. 그것만 가지고도 문제가 되고 옷 벗어야 할 거 같다"는 말도 확인됐다.

"친구 다시 한번. (수사기관이) 물어보면 싱글몰트바이고 여자애들 한둘 로테이션해서 술값도 50만~60만원이라고 해달라"는 말도 있다.

그는 또 "내가 감찰 대상이 되면 언론에 나고 나도 죽고 바로 세상에서 제일 원칙대로 너도 수사받고 죽어"라며 김씨를 압박했다.

김 부장검사는 김씨로부터 현금 1500만원과 함께 수시로 룸살롱 접대 등을 받고 김씨가 수십억원대 사기 등 혐의로 고소 당하자 후배 검사들에게 접근해 사건 무마를 시도한 것으로 의심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차명계좌 거래를 하고 내연녀에게 송금을 했다는 추문도 거론된다.

'접대ㆍ뇌물ㆍ사건개입'이라는 비리공식을 뛰어넘는 '종합 비리 세트' 수준이라는 탄식이 그래서 터져나온다.

법무부는 7일 김수남 검찰총장의 요구를 받아들여 김 부장검사의 직무를 2개월 간 정지했다.

김 총장은 앞서 김 부장검사가 직무 집행을 계속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검사징계법 제8조에 따라 법무부 장관에게 직무집행정지를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김 총장의 지시로 특별감찰팀을 꾸리고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5일 체포된 김씨는 김 부장검사를 접대하는 자리에 다른 검사들도 동석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이 이들까지도 모두 조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진경준ㆍ홍만표 사건'을 뛰어넘는 초유의 법조비리 사태로 이번 의혹이 비화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검은 이 같은 의혹을 적어도 지난 4월 비교적 구체적으로 파악했으나 그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검사 사태를 단초로 '공직자비리수사처' 등 검찰 개혁 논의가 크게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

당장 이번 의혹 진상규명을 검찰이 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된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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