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호의 제언⑥]연기금 등 의결권행사 '선관의무' 지침 만들자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불법·탈법·반칙·갑질,의결권 견제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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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업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기업의 이익보다는 오너와 오너 패밀리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법 앞의 평등, 공정한 경쟁, 경쟁의 촉진 등의 측면에서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다. 더 이상 번영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오너 이익 중심의 경영이 가능한 것은 여타 주주들이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자본시장에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다. 그것으로 기업의 덩치를 키웠다. 오너의 지분율은 20~30%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오너는 100% 주인의 권한을 행사해 왔다. 기업은 사적 자치가 허용되는 곳이다. 기업 경영에 문제가 있으면 주주들이 나서야 한다. 주주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반 소액주주들은 실제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하지만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펀드 등 금융기관들은 다르다. 주식 보유 물량도 많을뿐더러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도 있기 때문이다. 연기금은 국민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고 금융기관은 예금자나 투자자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다. 그들이 오너 이익 중심의 경영에 대해서 침묵함으로써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면 이는 선관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위반이 된다. 정부는 그들이 선관의무를 올바로 다할 수 있게 유도하고 감독하면 된다.

우선 정부는 연기금과 금융기관에 대해서 주식의 의결권 행사에 관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이 지침에는 의결권을 반드시 행사해야 하는 몇 가지 경우를 명시해야 한다. 오너가 100% 지분을 보유하지 않는데도 사외이사 전원을 실질적으로 임명하는 행위, 집중투표제를 금지하고 있는 행위, 친인척들의 경영참여 행위, 갑질 행위, 일감몰아기 등 부당하고 부도덕한 행위 등을 명시하고 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게 해야 한다. 특히 자기들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사외의사의 임명을 반드시 요구해야 한다. 기업의 행위가 기업가치를 훼손한다고 판단되면 기업에 이런 행위의 근절을 요구하고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기업 경영 전반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오너의 친인척이 능력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능력이 없는데도 중책을 맡는다면 기업가치가 훼손된다. 연기금과 금융기관은 오너의 부당한 행위를 용납해 기업가치를 훼손시키면 안 된다. 선량한 관리자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정부는 선관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연기금과 금융기관을 제재하면 된다.

과거 재벌 등 대기업의 과도한 팽창을 막기 위해 고안된 출자총액제한 등의 견제 장치들은 이제 의미가 없다. '법 앞의 평등'을 이루고 연기금과 금융기관들의 의결권 행사를 통해 불법, 탈법, 반칙, 갑의 부당한 횡포 등을 근절하면 된다. 오히려 기업이 정당한 방법으로 팽창한다면 번영을 위해 환영할 일이다. 출자총액제한 등의 조치는 또 다른 경쟁 제한 조치이며,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이행하는 것도 문제 해결의 본질은 아니다.부당한 갑의 횡포라고 비판받고 있는 납품가격 후려치기 문제도 이제는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경제가 글로벌화하면서 수요독점 업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휴대전화를 보더라도 애플, 삼성, LG, 중국업체 등 여러 업체가 경쟁하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 보면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부품시장에서는 모두 독점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부품 가격을 정한다. 수요독점의 문제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애플 등 외국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다. 경쟁은 다수의 공급자와 다수의 수요자가 존재해야 가능하다. 다수의 공급자는 존재하지만 수요자는 유일할 경우 전형적인 '시장의 실패' 케이스가 된다.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경우이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을 보면 가격을 부당하게 결정하는 행위는 시장지배적인 사업자의 남용행위로 규정돼 있다. 납품가격을 일방으로 정하는 경우 그를 통한 이익의 수십 배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이런 행위를 신고한 협력업체에는 상당한 보상을 해 주도록 제도를 마련하면 어떨까. 대기업에 납품해 본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들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다. 중소기업의 창의와 열정을 해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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