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크리에이티브'와 '다이내믹'

 수 년 전 호주를 방문했을 때, 그 나라의 가장 큰 이슈는 모 장관의 아들이 예산 지원을 받는 휴대폰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파문'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국민들은 뉴스에 큰 관심도 없는 듯했다.
 한국은? 자고 일어나면 메가톤급 뉴스가 넘쳐난다. 죄를 벌하는 검사들의 잇따른 비리 의혹에다 부장판사의 성매매 소식까지 더해졌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아니 세계적인 세력 재편의 계기가 될 사드 배치라는 어마어마한 뉴스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면밀한 검토를 했다고 해놓고 이제 와 성주 내 다른 지역도 검토할 수 있다고 한다. 참외도 없고 계란도 없는 곳을 찾는 건가. '히트다 히트'라는 유행어가 절로 입에 감긴다. 연예인의 추문이야 이제 일상다반사다.
 웬만한 이슈는 밀려오는 또 다른 이슈에 파묻히기 일쑤다. 고위 공직자의 '개 돼지' 망언 정도는 돼야 그나마 대중에게 각인되며 서서히 물러날 것이다. 한국 영화에 자극적인 소재가 넘쳐나는 것도 현실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라거나, 굳이 영화관에 갈 필요가 없다는 걸 위안으로 삼으라는 시답잖은 농담도 들린다. 이걸 '크리에이티브'하다고 해야 하나 '다이내믹'하다고 해야 하나. 정부가 새롭게 내놓은 전자보다는 아무래도 후자가 절절하다.

 한국은 글로벌 기업들의 상품 시험무대, 테스트베드로 인식되곤 한다. IT 인프라가 잘 깔려 있기도 하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여름 해변이나 워터파크를 래시가드가 점령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따지고 보면 한여름 피서지에서 죄다 긴팔 웃옷을 입고 다니는 풍경을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말하면 어르신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다. "그래, 젊을 때는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덕담 아닌 덕담도 잇따른다. 한국 대기업에서 일했던 프랑스인이 쓴 책 제목은 '그들은 미쳤다, 한국인들'이다.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씩 일해야 하고 휴식은 점심과 저녁 식사시간, 담배 피는 시간이 전부다. 한 한국인 직원은 업무 중에 다른 사람에게 의자를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재밌는 지옥'으로 비쳐진다. 그 프랑스인도 한겨울 영하 12도 날씨에 폭탄주 파티를 한 경험을 책에 썼다. "마시고 또 마시고 취했다"라며. 해외 지사장들이 한국으로 호출됐는데 회장을 만나기 전 직원들이 두통약을 제공하더라는 일화도 있다.

 이게 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아등바등 살기 때문 아니겠는가. 마치 전쟁에서 2등은 의미가 없다는 듯이. 오랜 군사문화의 잔재가 아닌가 싶다. 이제 좀 내려놓고 정말 각자의 삶을 '크리에이티브'하게 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정부의 의도가 그런 데 있다면야 '오케이'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