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새누리당의 차기 대선 전략?

'8·9 전당대회' 지도부 선출 위한 호남권 연설회장에 플래카드 등장
충무공 이순신 어록 인용, 호남 표심 자극
"예산 몰아주겠다" "차별 없애겠다"며 후보마다 구애
다자대결 구도에선 호남 선거인단이 캐스팅보트 역할
일부 후보, 호남권 새누리당 당협위원장을 독립운동가에 비유해 논란


[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
3일 오후 전북 전주시 화산체육관. '8·9 전당대회' 호남권 합동연설회가 열린 이곳에는 눈에 띄는 플래카드 한 장이 내걸렸다. 붉은색 바탕에 각기 흰색과 노란색으로 쓰인 글씨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새누리당 전주 합동연설회장에 내걸린 플래카드. 페이스북 캡처

새누리당 전주 합동연설회장에 내걸린 플래카드.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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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구는, 조선시대 정조대왕의 명으로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의 어록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위기상황을 맞아 전남·북으로 이뤄진 호남이 없다면 국가도 버틸 수 없다는 호소였다. 비옥한 곡창지대요, 왜군에 맞선 의병의 근거지였던 호남은 전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문구는 요즘 새누리당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 것일까.

2.7%. 전북과 전남, 제주를 합한 호남권의 새누리당 전대 유권자는 9501명에 불과하다. 전체 선거인단 34만 7506명 가운데 가장 비율이 낮다. 하지만 이날 연설회장은 호남에 대한 구애로 넘쳐났다. 지난 4·13총선에서 정운천 의원(전북 전주시을)과 이정현 의원(전남 순천시)이 동반 당선되면서 달라진 이 지역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 했다.

객석에는 4000명 가까운 당원들이 운집했다. 새누리당 전북도당위원장인 정운천 의원은 이곳을 찾은 여당 지도부와 당대표·최고위원 후보자 앞에서 "철옹성이라던 전북 전주성이 무너졌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전주에선 32년 만에, 전북에서는 20년 만에 보수정당 의원으로선 처음으로 당선됐다.

새누리당 전주 합동연설회장의 지도부 후보자들. 페이스북 캡처

새누리당 전주 합동연설회장의 지도부 후보자들.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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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선을 앞둔 호남지역 표심을 놓고 정 의원이 "바로 전북, 전남, 광주가 새누리당의 미래의 땅, 희망의 땅"이라고 얘기하자,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어 여당 지도부를 연단으로 불러 모아 객석을 향해 인사시키며 세(勢)를 과시했다.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 정진석 원내대표, 박명재 사무총장, 김광림 정책위의장 등이 정 의원의 호명에 따라 차례대로 연단에 올랐다. 이들은 정 의원이 즐겨 부른다는 '된다송'을 함께 불러야 했다.

정 의원이 "지난 7년간 전북에 와서 힘들고 어려울 때 부른 노래"라는 '된다송'은 "된다, 된다, 된다~"로만 이어지는 일종의 구호에 가깝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무려 9번이나 연단에서 '된다'란 구호가 반복됐고, 김 비대위원장은 마지막에 두손을 위로 모아 하트모양을 그려 보였다. "새누리당이 (호남에서의 지지를 기반으로) 내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꼭 이뤄낼 것"이라고 말한 정 의원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새누리당 전주 합동연설회에서 정운천 전북도당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 보이는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 페이스북 캡처

새누리당 전주 합동연설회에서 정운천 전북도당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 보이는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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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자들의 호남 구애도 연단에서 불을 뿜었다. 최고위원에 도전한 최연혜 후보는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당협을 이끌고 있는 호남지역 당협위원장들께 경의와 존경을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용기 후보도 "'호남'하면 '희망'으로 답해 달라"고 했고, 객석에선 수천 명이 화답했다.

이은재 후보는 "호남을 위한 공약으로, 지역경제의 형평성 차원으로 호남시대 개막을 위해 바로 이곳에 예산 폭격(기)을 떨어뜨리겠다"고 공약했다. 함진규 후보도 '호남이 없으면 국가가 없다'는 충무공 이순신의 어록을 인용해 표심을 공략했다.

이날 객석을 가장 떠들썩하게 만든 건, 이 지역 출신으로 당대표에 도전한 이정현 후보였다. 이 후보는 "호남의 많은 인재들이 관청에서 회사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데, 엄연한 사실"이라며 "이것이 정상적 나라인가"라고 되물었다. 또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되새기며 "공수부대와 탱크 앞에 70만 명이 설 수밖에 없었던 데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외에 소외받는 사람들의 사회적 비극이 자리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뒤이어 연단에 오른 한선교 후보가 이 후보를 잔뜩 추켜올린 뒤 "(여러분들에게) 남은 표가 있으면 저 좀 달라"며 분위기를 띄울 정도였다.

새누리당 전주 합동연설회. 페이스북 캡처

새누리당 전주 합동연설회.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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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의 배경에는 다자대결 구도에서 호남 선거인단이 사실상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깔려 있다. 또 새누리당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호남 유권자들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절박함도 담겼다.

앞서 이 후보는 자신이 당대표가 되면 호남에서 새누리당이 최소 20%의 득표율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이곳에서 6~11%의 득표율을 얻는데 그쳤다. 경북에서 80% 넘는 지지율을 거둔 것과는 상반된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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