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 난관/정영효

 
  
 난간에 매달려 우리는 오랫동안 버티기를 한다
 한 사람이 떨어질 때까지
 한 사람은 선언이 될 때까지
 아래쪽이 결국 당겨질 때까지
 죽기 싫고 죽을 마음도 없지만
 난간에 매달릴 수 있는 용기 때문에
 우리는 오랫동안 말하지 않고
 옆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썩은 침을 삼킨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잊어버릴수록
 포기를 참아야 하는 시간
 얘들아 또 어디 간 거니?
 어서 밥 먹어라
 그런 목소리가 그리운데
 그런 목소리가 들리면 멈출 것 같은데
 난간은 우리를 더 밀어내고
 책임은 도망가기 어렵고
 한 사람이 흐릿해질 때까지
 한 사람이 각오가 될 때까지
 뜨거워진 공기와 여전히 싸운다
 순서를 정하기는 늦었구나
 거꾸로 향할 기분을 계속 망설이면
 손을 놓을 용기가 부족해질 테니까
 우리는 할 수 없이 난간에 매달려
 오랫동안 마지막을 떠올리고
 내려놓기 힘든 자리를 지키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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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달려 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한없이 매달려 있다. 끝까지 매달려 있다. 포기를 모른 채 매달려 있다. 스펙에 매달려 있고 학점에 매달려 있다. 전세 값에 매달려 있고 대출금에 매달려 있고 아이 학원비에 매달려 있고 자동차 할부금에 매달려 있다. 언제부터 매달려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쩌면 탯줄이 끊긴 후로 계속 매달려 있었던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손을 놓고 싶다. 손을 놓고 싶어도 놓을 수가 없다. 그건 용기가 아니다. 게다가 나만 매달려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 가족도 매달려 있고 내 친구들도 매달려 있고 내 동료들도 매달려 있다. 그러니 손을 뻗자. 손을 뻗어 함께 꼬옥 매달려 있자. 저 처마 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우리라면, 그래, 그처럼 맑은 이유 하나 생길 때까지 최선을 다해 매달려 있어 보자. 채상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