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 삼선교/최설

 삼선교/최설

 
 뒷모습은 당신을 위해 남겨 둔 얼굴
 이토록 검은 머리카락으로 대답한다 이 계절은 오늘까지 같은 발만 내딛어도 같은 사람이 되던
 순간이 있었다 똑같은 눈동자로
 그림자가 해질 때까지 밤길을 뒤척거린다
 나폴레옹제과점 홍대부속중고등학교 초콜릿초콜릿
 당신은 불빛이 되고 모두가 한밤이었던 날들

 아무도 건너지 않는 신호등과
 창이 큰 가게들 성곽의 조명을 따라 걸으면
 뭉쳐진 어둠이 발아래 모였다
 입을 다문 코끼리의 표정으로 간다
 골목의 끝, 사라진 고가도로가 보일 때까지

 뒤통수는 숨을 참고 걸어가는 당신
 앞이 깜깜해지면 모르는 사람의 뒤를 따라갈 것
 문틈에 날이 서고 담장들 숨을 죽이고
 집집마다 숨겨 둔 애인이 걸어 나오는
 밤 부서진 무릎으로 걷는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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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그런 지명(地名)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리고 저릿한 그런 지명 말이다. 이제는 영원히 되돌아갈 수 없는 곳, 그러나 그곳을 여전히 따스하게 포유하고 있는 그 시절 그리고 그때 그 사람. 시인에게는 아마도 '삼선교'가 그런 곳인 듯하다. 늦은 저녁에 만났을까? 두 사람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나폴레옹제과점"을 지나 "홍대부속중고등학교"까지 걸었을 것이다. 초콜릿을 나누어 먹으면서. 그러다 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어라, 우리 같은 발을 내딛고 있네.' 그렇게 서로 애인의 발걸음에 맞춰 지금은 사라진 청계고가도로까지 걷고 걸었을 것이다. 마냥 좋았을 것이다. "당신은 불빛이 되고" 그래서 차라리 이 세상의 "모두가 한밤이었던 날들". 그런 사람, 그런 지명이 당신에게도 꼭 하나는 있을 것이다. 오늘 그곳에 가자. 일단 가 보자. "집집마다 숨겨 둔 애인이 걸어 나"온다. 채상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