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봄날같은 '제주생활의 중도'…이왈종 개인전

이왈종 화백

이왈종 화백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집착하고, 양극으로 치닫으면 괴롭다. 서로 비교하지 말고 평상심을 유지해야해. 행복해지는 조건이 바로 '중도'(中道)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갤러리 안쪽 전시장 한 가운데 테이블을 펼치고, 동양붓에 먹을 묻혀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이왈종 화백(71). 전시장은 온통 화사한 색들로 향연을 이루고, 관람객들은 이 화백이 그리는 그림과 글에 빠져든다. 화가는 이제 막 결혼한 삼십대 초반의 청년을 위해 남녀가 키스하는 얼굴 그림과 사랑을 속삭이는 글을 순식간에 완성한다. 그는 만나는 이들에게 자주 '행복'과 '중도'를 언급한다.19일 오후 봄꽃이 만발한 서울 삼청로 초입 현대화랑에서 4년 만에 열리는 이왈종 화백의 개인전을 찾았다. 장지에 아크릴 그리고 수정가루와 다양한 매체가 혼합된 큰 그림들이 빼곡하게 걸려있다. 마을 수호신 같은 커다란 나무가 그림의 배경이 되고, 집과 화단, 사슴과 새들, 들풀과 장독대, 밥상 앞에 앉은 두 남녀, 집에 다다른 자동차가 보인다. 이왈종 화백의 '제주생활의 중도' 시리즈다. 여느 동양화와는 달리 그의 화려한 색상과 어우러진 일상의 소소한 모습들은 우리가 쉽게 지나쳐버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같은 시리즈지만 좀 특이한 배경을 지닌 그림들도 보인다. 일주일에 두번 정도 골프를 치는 골프광인 이 화백은 열중해 골프를 치는 무리들을 화폭에 담았다.

제주생활의 중도, 2015, 장지위에 혼합, 91 x 117cm

제주생활의 중도, 2015, 장지위에 혼합, 91 x 117cm

원본보기 아이콘

제주생활의 중도, 2015, 장지위에 혼합, 72.5 x 60cm

제주생활의 중도, 2015, 장지위에 혼합, 72.5 x 60cm

원본보기 아이콘

관람객들이 도록에 그려달라고 부탁한 즉석그림을 그리는 중인 이왈종 화백

관람객들이 도록에 그려달라고 부탁한 즉석그림을 그리는 중인 이왈종 화백

원본보기 아이콘

그는 10여년을 추계예술대학교에서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지난 1990년 제주도 서귀포로 내려갔다. 화백의 '중도'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채 자연과 하나가 되어 집착을 버리고 무심(無心)의 경지에 이른 상태인 동시에 그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관이다.

작품들은 민화적인 형상과 색채가 다분하며, 다양한 파격을 동양화에 가미한다. 초반 작업은 실경산수가 주였지만, 제주에서 활동하면서는 인물과 동물 군상 그리고 채색이 중심을 이뤘다. 회화 뿐 아니라 부조, 목조, 도자기 등 매체도 다양하다. 이 화백은 수묵화의 고전적 양식에서 벗어나 수묵채색 작업의 현대화를 접목했다는 평을 받는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씨는 "그의 화업은 '생활 속의 중도'에서 '제주 생활의 중도'로 주제가 확장됐다. 하늘을 나는 물고기, 집보다 더 큰 꽃, 돌하르방, 배, 말, 자동차 등은 물론 하늘을 나는 사람이 같은 크기로 등장하는 시각적 형식을 보여 주었다. 어느 것은 오히려 사람보다 더 크게 그려지기도 했다"며 "그는 인간과 만물은 물고기나 새처럼 하나의 똑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사물이 더 작을 필요도 없고 동등하다는 사실을 그림을 통해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이 화백은 "제주에 정착한지 벌써 스물 일곱해째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 그림도 안 그려진다. 좋은 작품은 평상심에서 나온다. 내 마음의 평화와 진정한 자유란 어디서 오는가 생각하는 동안 삶의 무상함을 실감했다. 이미 늙은 몸은 허약하고 말랐으나 온갖 꽃들과 새를 벗 삼아 살아가는 나는 마음만은 풍요롭다"고 했다.

그는 제주도에 지난 2013년 건립된 ‘왈종미술관’을 시작으로 10여년 전부터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미술교실을 열어 봉사하고 있고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의 운영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1년 서귀포시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협약도시로 선정된 이후 유니세프 서귀포시후원회의 회원으로 위촉돼 매년 판화전을 개최해 기부활동도 벌이고 있다.

전시는 오는 6월 12일까지. 02-2287-3591.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