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양적완화' 힘싣는 정부 재정진단.."경각심 가져야"(종합)

국가채무 600조원 육박하고 재정건전성 악화하는데 "양호한 수준" 핑크빛 진단
전문가들 "좀 더 보수적으로 예측·관리해야"..'새누리당 총선공약 지원用' 지적도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아시아경제 DB)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아시아경제 DB)

원본보기 아이콘

자료 제공 : 기획재정부

자료 제공 : 기획재정부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국가채무가 600조원에 육박하고 재정건전성은 악화해 나라 살림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채무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이 국제적으론 양호한 수준인데다 공무원연금 개혁 성과 가시화로 걱정거리가 더 줄었다고 상황을 낙관했다. 이 같은 인식은 여당이 최근 총선 공약으로 들고 나온 '한국판 양적 완화'와 맞닿아 있어 "정부가 정치권 등에 흔들리지 말고 철저히 재정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5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5회계연도 국가결산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를 포함한 광의의 국가부채는 전년 대비 5.9%(72조1000억원) 늘어난 1284조8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으로 국채 발행이 늘었고 부동산 경기 호조에 따라 주택청약종합저축이 인기를 끈 영향이다.
(관련 기사 : [2015 국가결산]메르스 추경에 국가부채 1300조원 육박)

공무원·군인 연금의 미래 지출 예상치인 연금충당부채는 16조3000억원 늘었는데, 2014년(47조3000억원 증가)과 비교하면 증가폭이 3분의 1 수준으로 작아졌다.

이는 지난해 공무원연금 개혁을 통해 2016∼2020년 수급자 연금액을 동결하고, 연금 수령 시기를 60세에서 65세로 늘리는가 하면 유족연금 지급률을 70%에서 60%로 낮추면서 충당부채 규모가 약 52조5000억원 줄어드는 효과가 생겨서라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현금주의(현금이 실제 수입과 지출로 발생할 때 거래로 인식하는 회계 방식)에 입각한 국가채무는 590조5000억원으로 2014년보다 10.7%(57조3000억원)나 증가했다.

600조에 이르는 국가채무는 중앙정부(556조5000억원)와 지방정부(34조원) 채무를 각각 더한 숫자다. 지난해 통계청 추계인구 5061만7045명으로 나눠 계산할 경우 국민 1인당 국가채무는 1166만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7.9%로, 전년보다 2.0%포인트 올랐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래 지출 예상치를 포함한 광의의 국가부채도 중요하지만 만기가 정해져 있는 국가채무는 '당장 갚아야 되는 현금'이란 측면에서 관리가 더 시급하다"며 "국가채무가 전년보다 대폭 증가하고 GDP 대비 비율도 증가세를 이어가는 것은 국가 재정에 분명 좋지 않은 신호"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국가채무의 GDP 대비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보다 상대적으로 낮다며 '걱정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작년 OECD 가입국들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평균은 115.2%였다. 국가채무의 GDP 대비 비율 증가 속도 또한 한국(2007년~2015년 사이 9.2%포인트 증가)이 OECD 평균(같은 기간 40.7%포인트 증가)에 비해 나은 수준이라고 기재부는 전했다.

애초 정부 전망(국가채무 595조1000억원, GDP 대비 38.5%)에 비춰 봐도 국가채무는 양호한 것처럼 보이지만, 경각심을 늦춰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최원석 교수는 "처음부터 채무가 많이 늘어나리라 예상하고 결과가 나오자 '전망치보다 괜찮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안일한 대응일 수 있다"며 "좀 더 보수적으로, 리스크를 피하는 방향으로 국가채무 예측과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물론 한국의 재정 상황이 OECD 가입국 등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양호한 게 사실"이라며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잘 유지해 왔지만 앞으로가 관건이기 때문에 제도 개선 등을 통해 면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정부의 재정건전성 판단 기준인 관리재정수지는 적자폭이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43조2000억원) 이후 6년 만에 가장 컸다. 세수 펑크에서 4년 만에 벗어나고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충당부채 증가율이 크게 낮아졌는데도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진 것이다.

재정 적자는 2010년 13조원으로 줄었다가 2012년 17조5000억원, 2013년 21조1000억원, 2014년 29조5000억원 등 5년 연속 증가했다.

기재부는 "지난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추경을 편성하는 등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집행한 결과로 재정수지가 다소 악화했다"면서도 "추경 당시 46조5000억원 적자를 예상했던 데 비해선 8조6000억원가량 개선된 것"이라고 긍정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지난해 기재부는 2014회계연도 국가결산 결과를 발표하면서는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국제 기준을 고려하면 건전하지만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복지재정 증가 추세 등을 감안해 지금부터 더 철저하게 재정건전성과 국가재정을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노형욱 재정관리관)

그러다 올해엔 '핑크빛 진단'으로만 일관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선 새누리의 총선 공약인 한국판 양적 완화와 연결 지어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판 양적 완화는 한국은행의 채권 매입을 통해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가계 빚 부담도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한 민간 연구소 관계자는 "양적 완화는 국가의 재정 지출, 즉 빚지는 걸 관대하게 바라보는 정책이다. 정부가 국가채무와 관리재정수지에 대해 좋게만 설명함으로써 여당에 힘을 실어준 것 같다"며 "정치적으로는 흥행이 되는 정책과 진단일지 몰라도 재정적 측면에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