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 우리도 괴로워" 교사들 '민폐 학부모 스트레스'


[아시아경제 부애리 기자]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최모씨(26)는 새학기가 시작되면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한다. "00을 신경써달라" "우리 애는 요즘 어떠냐"고 묻는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통씩 쏟아진다. 새벽이 다 돼 신학기 교무활동 준비를 하다 잠이라도 들라치면 모바일메신저의 알람이 울린다. 보나마나 학부모가 보낸 것이다. 최씨는 "도를 넘은 학부모 사례를 들라면 끝이 안날 것"이라고 말한다.

15일 교육부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전체 교권침해 사건은 감소하는 추세지만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는 거꾸로 늘었다. 매년 전체 교권침해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 1.8%, 2011년 1.0%, 2012년 1.6%, 2013년 1.2%, 2014년 1.6%로 2014년까지는 1%대에 머물렀지만 지난해에는 3.1%로 확 뛰었다. 감당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일부 민폐학부모들 때문에 교사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민폐 학부모의 유형은 다양하다. "우리애 반 바꿔주세요" 무리한요구족
학부모들이 반 편성을 꼬투리 잡는 경우는 다반사다. 최씨는 "'우리반은 누구누구 엄마들끼리 사이 안 좋으니까 반 편성할 때 그 애들이랑 떨어트려 놔달라'고 요구한다. 반은 전학년도 담임들끼리 상의해서 정하는 데 개인의 편의를 봐줄 수 없는 노릇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 이모(25)씨는 "가끔 학생 부모가 전화해서 학교교칙에 반하는 행위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화장을 금지하는 교칙 때문에 화장품을 압수했는데 '왜 우리아이에게 상처를 주느냐. 화장품 돌려달라'고 말해 당황스러웠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생활기록부를 잘써달라며 촌지를 몰래 책상에 놓고 가버려 난감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촌지는 교사징계 사안이다.한국교총이 지난 1월 교사 7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1.2%는 이처럼 학생이 분명히 학칙을 어겼는데도 학부모의 문제제기나 항의, 민원 제기로 2차 침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학생 생활지도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퇴근하고 매일 전화오는 학부모도" SNS연락족
스마트폰과 SNS는 교사들에게 여간 껄끄러운 문제가 아니다. 학부모들은 사소한 질문부터 진로상담까지 담임교사에게 수시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다.

최씨는 "아는 선생님 중에는 거의 스토커수준의 학부모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었다"며 "매일 퇴근할 때쯤에 전화해서 '오늘은 우리 애가 수업이 재미있었대요, 없었대요'부터 시작해서 다른 선생님들 뒷담화까지 1시간이 넘게 통화하는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초등학교 교사 박모(27)씨는 "학부모들은 카톡으로 학교 준비물을 묻는 것에서부터 심한 경우는 진로상담까지 한다"며 "요즘은 맞벌이 가정이 많아서 밤늦은 시간에 카톡이 많이온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학부모들이 보낸 카톡에 답을 안할 수도 없고 일일이 답장하기가 정말 피곤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투넘버(한 핸드폰에 번호를 두 개 쓰는 것)를 쓰는 선생님들이 많다. 학부모용 번호를 따로 만들면 카카오톡 친구목록에는 뜨지 않는다.

"애도 안 낳아봤는데 뭘 알아" 교사무시족
나이가 젊은 교사들은 '애도 없는데 뭘 알겠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일부 학부모들은 은근슬쩍 말을 놓는다. 박씨는 "'나중에 결혼해보면 알아요' '애 키워보면 알아요'라는 말 정도는 일상이다. 학부모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의심받는 기분이 든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한번은 공개수업날 반장엄마가 찾아와 반장한테 인사 안시켰다고 기분이 상해서는 다른 사건을 꼬투리잡아 난동을 피웠다"고 전했다.

첫 발령지에서 6학년 담임을 맡은 김모(29)씨는 부반장 학부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왜 우리애가 반장이 안됐냐"는 이유에서다.

교사들은 "학생의 부모인데 함부로 화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거리를 두자니 섭섭해하고 난감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전문가는 교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전예방 조치나 행정적 지원 체제가 미미하다고 지적한다.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은 "교권보호법이 통과됐지만 사후적 조치에만 머물러 있는 점이 아쉽다"며 "교사들 입장에서 학교의 위상이나 지역사회의 시선 때문에 섣불리 대응하지 못하고 참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교사가 학부모 스트레스로 심신이 피곤해지면 제대로 일하기가 힘들어지고 궁극적으로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가는 것"이라며 "학부모들이 불만이나 민원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지만 합당한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미국이나 일본처럼 정해진 장소에서 복수의 선생님들과 학부모가 함께 상담하는 형태로 가야한다"고 전했다. 또 "학부모들도 자기자녀중심의 생각을 벗어나는 등 의식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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