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보는 왜 사라졌지?"…선거운동 같은 여론조사

국회의사당. 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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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다음 5명 중 이 지역 'ㅇㅇ당' 국회의원 후보로 가장 적합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1월 중순 서울의 한 지역구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20대 총선 여론조사의 문항이다. 선택지에는 모두 5명의 예비후보가 제시됐다. 문제는 이어지는 문항들이다.

갑자기 범위를 좁혀 "A후보와 B후보 중 이 지역 국회의원으로 누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더니 '경쟁정당 현역의원과 A후보가 붙는 경우', '경쟁정당 현역의원과 B후보가 붙는 경우'를 각각 가정해 곧이어 질문한다.

AㆍB후보를 뺀 다른 후보들은 첫 질문 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설문에서 배제됐다. 이달 초 경기도의 한 지역구에서 실시된 여론조사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첫 문항은 "다음은 'ㅇㅇ당'으로 등록한 예비후보들입니다. 'ㅇㅇ당' 국회의원 후보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보십니까?"라는 내용이다.

이어 "다음 인물들이 각 당의 후보로 최종 경합한다면 선생님께서는 누구를 지지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데, 역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전(前) 문항 선택지 1번에 등장한 후보를 'ㅇㅇ당' 최종 후보로 가정해 경쟁정당 후보들과 선택지에 나란히 배치했다.

다른 후보들은 이번에도 첫 질문 뒤 설문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20대 총선이 가까워오면서 각종 여론조사가 난무하는 가운데 이처럼 특정 후보를 대놓고 부각시키거나 설문지에 제대로 등장조차 시키지 않는 엉터리 여론조사가 속출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25일 "질문 방식에 문제가 있는 조사가 무척 많다"면서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가 쏟아지다보니 하나씩 들여다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특정 후보를 근거 없이 드러내거나 배제하는 경우도 자주 발견되는데, 사례가 너무 많고 주관적인 해석의 여지도 개입돼있어서 정확하게 몇 건이 문제라고 집계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공표나 보도가 목적인 여론조사는 현행 규정에 따라 실시 전에 중선관위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또한 여론조사 결과와 설문 문항 등 일체를 심의위 홈페이지에 게재해야 한다.

선거철을 맞아 적게는 하루 두세 건, 많게는 수 십 건의 여론조사 결과가 심의위 홈페이지에 올라온다. 앞선 사례들처럼 특정 후보 홍보에 가까워보이는 여론조사 결과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중선관위 관계자는 "설문의 어느 단계에서 특정 후보가 갑자기 부각 또는 배제될 경우 그 때부터 그 여론조사는 오염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가령 내가 알고 있거나 지지하는 사람이 설문에서 계속 빠져버리면, '그 사람은 별 볼일 없는 모양'이라는 식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높고 여론이 왜곡될 수 있다"면서 "여론조사가 선거운동 도구로 악용되는 경우"라고 부연했다.

이런 문제를 제재할 구체적인 근거조항은 아직 없다는 게 중선관위의 설명이다.

20대 총선과 관련해 이 같은 내용으로 중선관위 차원에서 특별한 조치가 내려진 사례는 아직 없다고 한다.

지역 선관위나 심의위 차원에서 신고ㆍ접수된 여론조사 내용을 모니터링 해 문제가 있거나 반복된다고 판단하면 여론조사 주체 측에 주의ㆍ경고를 하는 정도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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