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야당에게 묻는다]고질적 분열, 같은 길로 가는 겁니까

17대 총선 뒤 지방선거 제외한 주요 선거 모두 패배
지지층 자지기 보다 바람몰이에 치중
언발 오줌 누기식 야권통합…분열과 이합집산만 반복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한국 정치권이 기로에 섰다. 특히 야당의 지리멸렬은 '강한 야당이 좋은 정치를 만든다'는 기본적인 정치질서를 흩뜨리고 있다. 반복적인 선거 패배, 고질병 같은 분열과 무능 등으로 인해 야당은 이제 집권 능력은 물론 그 의지마저 의심받고 있다. 안철수 의원과 김한길 의원의 탈당, 호남 의원들의 독자세력화 등으로 인해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 역시 피할 수 없게 됐다. 안 의원은 탈당한 뒤 과거 자신의 소속 정당을 향해 "평생 야당하기로 작정한 당"이라는 비판까지 했다.

야당은 2004년 탄핵 정국으로 17대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지방선거를 제외한 주요 선거에서 모두 패배했다. 야당 관계자 등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유를 들어 패배의 이유를 설명한다. 민주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선 패배 분석을 통해 영호남 인구 불균형, 소수인 진보성향 유권자, 50대 유권자가 중간층이 되는 고령화 등을 제시하며 야당이 선거에서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환경에서는 과거와 같은 방식의 정권교체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제1야당은 여당과의 1대 1 선거구도를 위해 군소정당 등과 후보단일화를 직간접적으로 이끌어 냈다. 후보 단일화, 야권통합 등의 수순이 그동안 야당의 선거 승리의 핵심 레시피(recipe)였던 셈이다. 야권연대는 야권표 결집이라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1번을 찍기 싫으면 2번을 찍으라'는 선거구도로 유권자의 선택지를 제한했다. 그 결과가 이기면 제1당, 지면 제2당이 되는 식이다.

야당은 탄탄한 정치적 지지층을 확보하는 등 바닥을 다지기보다 바람몰이를 통한 승리를 노려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 의원과 김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 것이 최근 사례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연합의 공동 창업주 안 의원과 김 의원이 연달아 탈당한 것은, 야권통합 전략이 얼마나 '언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이뤄졌는지를 보여준다.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지금까지 야권이 통합, 후보 단일화 이런 걸 해왔는데 2010년까지는 통했지만 이후로는 피로감이 있고 너무 많이 반복되어 왔다"며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 제기되는 야권연대론이 오히려 지지층을 흩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경고도 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교수는 "총선 공천을 앞두고 야당이 이합집산을 한다거나 후보 단일화를 주요 전략으로 하면 지지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야당의 혼돈은 당명 변경에서도 드러난다. 불과 20년 사이에 제1야당은 간판을 11차례나 바꿔달았다. 지난해 12월29일 옛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당명 변경은 별무효과였다. 야당이 국민들로부터 여당의 대안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증거가,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인 새누리당이 정치적 악재를 만나도 야당의 지지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정체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야당 의원들은 그동안 국민이 야당을 '대안'으로 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이유를 제시했다. 강경파로 통하는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우리 당은 싸워야 할 때 우물쭈물해왔다"며 "당지도부가 기본을 세우고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옛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임내현 무소속 의원 등은 "급진주의자들의 반기업적 행태로 보이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좌파'로 매도됐고 국민들은 그런 야당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당내 상황도 엉망이다. 최근 일련의 탈당 움직임과 첨예한 계파 대립에서 확인되듯 야당은 겉보기에는 하나의 단일 정당이었지만 실제 속은 '사분오열'된 상황이다. 사안이 있을 때마다 계파, 이념성향에 따라 이합집산은 반복됐다. 당직, 예산결산특별위원회나 주요 상임위 보직 등은 능력이나 원칙보다 계파, 친소관계에 따라 결정됐다. 일이 제대로 될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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