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디클]'김일성 만세' 대자보의 정체

겅희대·고려대 발칵 뒤집은 김수영 詩…40대 남성들 대자보 찢어


고려대에 붙은 '김일성 만세' 대자보 (서울=연합뉴스)

고려대에 붙은 '김일성 만세' 대자보 (서울=연합뉴스)


대학가에 '김일성 만세' 대자보가 나붙어 논란이 일고 있다. 들여다보면 김일성을 찬양하는 대자보는 아니다. 김수영 시인이 1960년에 쓴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옮겨 적은 것이다. 이 시는 ''김일성 만세' / 한국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 나는 잠이 올 수밖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일성 만세'라고 써도 무방할 정도의 언론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시가 강조하는 메시지다. 하지만 분단 현실 속에서 대북관념의 아킬레스를 여전히 건드리는 표현인지라 정부에선 긴장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김일성 만세
-김수영'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대학가에서 이 대자보가 처음 등장한 곳은 지난달 경희대학교였다. 경희대 경영대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이 11월30일 경희대 청운관 게시판과 페이스북 페이지에 이 시를 게재했다. 부담을 느낀 학교 측에서는 이 대자보를 철거했다. 이에 한 강사가 연대의 의미로 이 시를 대자보에 추가해 써 붙였다.경희대에 이어 '김일성 만세' 대자보가 나붙은 곳은 고려대였다. 지난 9일 김수영의 시를 담은 대자보가 붙었고 하단에는 고양이 그림과 함께 '이 대자보는 고양이가 썼으니 주인을 잡아가지 말라'는 내용이 덧붙여졌다. 온라인커뮤니티 등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을 댓글 등으로 쓸 때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 대자보는 다음날 찢겼다. 학생들은 40대 남성들이 대자보를 찢었고 경찰이 이를 가져갔다고 전했다.

고려대에 붙은 '김일성 만세' 대자보 (서울=연합뉴스)

고려대에 붙은 '김일성 만세' 대자보 (서울=연합뉴스)


이에 다음날인 11일 그 자리에 '김일성 만세' 대자보가 다시 붙었다. 이번에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패러디 대자보까지 등장했다. 이 대자보에는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 / 한국 표현의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 경찰과 검찰이 우겨대니 / 나는 잠이 깰 수밖에'라고 썼다.

더불어 이 대자보의 취지에 반대하는 반박 대자보도 등장했다. 제목을 '전두환 만세', 또는 '천황폐하 만세' 등으로 바꾼 대자보들이다. "표현의 자유도 상식적인 선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오프라인의 대자보 논쟁은 온라인으로도 옮겨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김일성 만세'가 도발적이기는 하지만 55년 전의 시를 그대로 적어 소개했을 뿐인데 논란이 증폭되는 현실은, 여전히 이 시의 메시지가 2015년의 이 겨울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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