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책보기] 조선을 만든 위험한 말들

조선을 만든 위험한 말들

조선을 만든 위험한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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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양사를 파하고 언로를 다시 여소서!” 중종을 향한 젊은 개혁가 조광조의 이 외침에 조선의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무오, 갑자 사화로 선비들의 목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던, 어떤 사가들은 조선의 왕들 중에 ‘가장 왕다운 왕’이었다는 연산군 시대, 모든 관원과 내시들이 ‘입은 화를 부르는 문(口是禍之門), 혀는 자신을 베는 칼(舌是斬身刀)’이라 새긴 패를 목에 걸고 다녀야 했다. 그 폭정의 공기가 채 가시지 않은 때에 신하와 백성의 말을 막고 있는 사관들을 내치라는 조광조의 발언은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위험한 말이었고, 결국 조광조는 스러졌다.

신간 역사서 '조선을 만든 위험한 말들'이 다룬 ‘위험한 말들’은 바로 저런 말들이다. 목숨을 걸고 도덕정치의 이상을 구현하려 했던 굵직한 선비들의 투쟁기이다. 2011년 '드라마 읽어 주는 남자'라는 책을 낸 저자 권경률은 누구에게 뭔가를 읽어주지 않으면 입이 근질근질한 사람인가 보다. 당시 TV에서 방영 중이던 온갖 드라마들의 시대, 역사, 사회, 문화적 배경을 조잘조잘 읊었던 이 남자가 이번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선비들의 저작들을 헤집어 ‘언로’를 열고, 지키려 싸웠던 사람들의 기개들만 톺아내 읊고 나선 것이다.“신하의 도는 의를 따르는 것이지, 임금을 따르는 게 아닙니다”라는 대찬 발언이 1493년 10월 27일 자 성종실록에 엄연하게 기록돼 있다. 발언의 배경은 이렇다. 영의정 윤필상 탄핵을 놓고 성종과 언관들이 충돌했다. 사헌부 탄핵을 받은 윤필상이 사직하려 하자 성종은 이를 불허했다. 그런데 홍문관의 사관 유호인이 성종의 불허 조치에 항명했다. 화가 난 성종이 오히려 유호인을 국문하려 하자 유호인의 상사였던 성세명이 왕에게 대놓고 저리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의 역사책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름 ‘성세명’이다. 만약에 상대가 연산군이었다면 발언의 대가는 목숨이었을 게 분명하다.

책은 ‘재상은 임금과 가부를 상의하고, 간관은 임금과 시비를 다툰다’는 정도전의 발언으로부터 시작된다. 임금 혼자서 가부를 결정할 수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왕의 독재가 아니라 사대부들이 펼치는 도덕정치의 큰 밑그림이 저 발언에 숨어있다. 정도전의 도덕정치 초판은 길재, 성삼문, 연산군, 중종, 조광조, 조식을 거치며 이백 년 후의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 이른다. 이황이 마침내 도덕정치의 토대를, 이율곡이 현실정치로 구현하긴 했지만 정도전의 초판에는 한참 못 미치는 반쪽에 불과했다.

‘지배자들의 가렴주구로 백성들 살림살이가 말이 아니다. 지배자들은 가죽이 다 헤어지면 털도 붙어있을 데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왕에게 아뢴 사람은 조식이었다. ‘백성들 우습게 보다간 왕 당신도 좋을 게 없다’는 말 그대로다. ‘임금이 있으려면 먼저 나라가 있어야 한다. 나라가 있으려면 백성이 있어야 한다. 백성은 양식을 하늘로 여긴다. 고로 임금은 백성의 양식을 하늘처럼 여겨야 한다’고 왕에게 말한 사람은 율곡 이이였다.그리고나서 17세기, 향촌을 지배하는 못된 사대부들로 인해 언로가 변질됐고, 민의가 왜곡됐다. 붕당정치로 언로가 꽉 막혔다. 그때부터 조선은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권경률 지음/앨피/1만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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