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준조세]각종 기부금·성금에 청년희망펀드까지…"올해만 65兆"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여야와 정부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기업들로부터 매년 1000억원씩 기부금을 받아 농어촌 지원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하면서, 사실상 정부가 기업에 강제 할당하는 '준(準) 조세'로 농어촌을 지원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중 FTA로 혜택받는 기업이 기부 대상이라고 하지만 어느 기업이 얼마나 추가적인 이익을 올렸는지 계산하기란 불가능하다. 매년 1000억원이라는 징수 목표까지 세웠으니 결국 과거 준조세 매기는 방식대로 기업 규모나 재계 서열에 따라 기부 액수가 할당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자발적'이라는 단서가 달렸지만 현실적으로 강제 출연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중 FTA로 수출이 잘된다면 수출 기업의 영업이익이 늘어날 것이고 그에 따라 더 걷힐 법인세 세입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농어촌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돈 쓸 일만 생기면 기업 팔을 비트는 것은 개발연대 식 낡은 수법"이라고 지적했다.지난 9월 '청년실업을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청년희망펀드도 준조세 성격이 짙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기금을 마련해 젊은층의 일자리 창출에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모금을 시작됐지만, 기업들의 팔목을 비틀어 억지로 걷는 모양새가 되면서 준조세식 성금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청년희망펀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0억원을 내놓는 것으로 시작으로, 정몽구 현대차 회장 150억원, 최태원 SK회장 100억원 등 5대 그룹이 내놓은 기부액만 750억원에 이른다. 사전 각본에 따른 듯한 기부 행렬로 인해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준조세 납부'라는 얘기가 끊이질 않는다.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도 그렇다. 창조경제 성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일자 정부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각 기업에 맞는 지역을 선정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기업의 강점에 지역 특성을 결합하기보다 기업의 사업장 소재지 등을 고려해 '주먹구구식 짝짓기'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센터를 운영해야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이 투입될 처지다. 여당에서조차 대기업 줄 세우기식 강제 할당, 홍보용 행사, 유효기간 2년짜리 정권 치적용이라는 야유가 나오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민적 관심을 받는 커다란 사고가 터지거나, 홍수가 나고 겨울이 와도 기업들은 '이번엔 얼마를 내야 넘어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진다. 기부금, 성금, 각종 협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작년에는 세월호 사고로 4대 그룹 400억원을 포함해 재계가 1000억원 넘는 성금을 냈다. 연말 불우이웃 돕기 성금은 삼성이 500억원으로 기준을 잡았고 나머지 기업들은 평소 비율대로 뒤를 이었다. 전통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온누리상품권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사야 한다. 4대 그룹이 지난 5년간 사들인 온누리상품권 규모가 6000억원에 이른다.정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준조세 규모는 18조7300억원, 내년에는 이보다 7.3% 늘어난 20조1200억원을 걷을 예정이다. 올해 예상되는 법인세수가 43조원 정도이니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준조세 규모가 법인세의 50% 수준에 육박하는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부담금관리기본법에 해당하는 부담금만이 포함될 뿐이다. 해당하지 않는 준조세가 100여종 더 있다는 게 재계의 하소연이다. 5년 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낸 연구 자료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내는 준조세는 법인세의 1.5배 규모다. 올해 기준 준조세 규모가 65조원에 이른다는 얘기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