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 금융권 연말 봉사활동과 산타클로스

[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다음 번에는 산타클로스 복장이라도 입어야 하는 건가요". 최근 만난 금융권의 한 홍보 직원은 연말을 앞두고 봉사활동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회사가 공들여 펼치고 있는 봉사활동 모습을 좀 더 많은 금융소비자들에게 알리고 각인시키려면 다른 곳들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콘셉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매년 연말과 연초에는 기업들과 각종 협단체들의 봉사활동이 몰린다. 겨울철 추운 날씨로 인해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손길이 더 필요한 시기이고 사람들의 관심이나 시선도 더 집중되는 때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각 금융그룹 회장들과 은행장, 제2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의 봉사활동 모습이 연일 방송과 신문 등을 통해 널리 보여지고 있다. CEO들이 임직원들과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김장을 하거나 좁은 골목길 고지대에서 연탄을 나르는 모습 등은 매년 이 시기에 익숙한 차림이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펼쳐지고 있다. KB금융그룹은 이달 중순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서울을 비롯한 전국 18개 지역에서 'KB사랑의 김장나눔'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이날 행사에는 윤종규 KB금융 회장을 비롯해 계열사 CEO들은 물론 피겨여왕 김연아, 스타요리사 최현석ㆍ오세득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도 다문화 이주 여성, 가족사랑봉사단원들과 함께 소외계층에 전달할 김장김치를 담그는 행사를 펼쳤다. 김용환 NH농협금융회장, 김주하 농협은행장은 임직원들과 '사랑의 농산물 꾸러미'를 만들어 독거노인ㆍ장애인 복지시설에 전달했다. 농협 특성에 맞게 단감, 고구마, 사과 등 7종으로 농산물 꾸러미 1400박스를 직접 제작했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은 연말을 앞두고 직접 호박전, 보쌈김치, 잡채 등 밑반찬까지 만들면서 취약계층을 돕기 위한 봉사활동에 동참했다. 이명재 알리안츠생명 대표는 '사랑의 연탄나눔' 봉사활동을 통해 총 2만장의 연탄을 밥상공동체 복지재단에 기부했다.

어려운 이웃들은 위한 이러한 금융권의 봉사활동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보여주기식' 봉사활동이라도 상관없다. 보다 더 많은 소외계층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직원들에 대한 배려도 함께 해줄 필요가 있다.

금융사의 한 직원은 요즘 봉사활동이 무섭다고 표현했다. 연말에 금융권에서 경쟁적으로 보여주기식 활동을 하다 보니까 평일에 불려나가는 곳들도 많아졌고 봉사활동 강도도 커졌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을 하는 것 자체는 뿌듯하고 보람된 일이지만 회사에서 하루일과를 빡빡하게 일정을 잡아 무리하게 진행하다 보면 봉사를 하는건지 노역을 하는건지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CEO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 몇 컷을 찍기 위해 불필요하게 많은 직원들이 동원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하루종일 봉사활동을 하면서 고생하는 모습보다 방송이나 신문 등에 보도되는 사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된다.

봉사란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해 힘을 바쳐 애쓰는 활동이다.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봉사란 자발적인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오버스럽거나 무리하게 봉사활동을 한다면 거기에 동참하는 사람들 모두 불편함만 커질 것이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주머니의 가치는 그 크기가 아닌 썰매를 타고 굴뚝을 내려오면서 흘린 땀에 있는 것이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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