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의 즐거움]道를 아십니까, 제4장 노자세일즈

 

 

도는 우묵하게 비어서 쓰임이 있는데 놀랍게도 넘치지 않는다/깊구나, 만물의 뿌리처럼/그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그 얽힌 것을 풀어주고, 그 빛을 부드럽게 하고, 그 먼지를 하나되게 한다/깊구나, 마치 뭐라도 있는 것처럼/누가 낳은 것인지 나는 모르지만, 하느님(帝)보다 먼저 형상지어졌다.

가끔 길에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현대판 노자인가 싶다. 노자는 도(道)를 하느님보다도 먼저 생겨나 있던 '빅뱅' 이전의 우주DNA 같은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 이것이 만물을 만들었는데, 예분광진(銳紛光塵ㆍ삐쭉 나온 것과 카오스와 빛과 흙)을 조물조물 어루만져 세상을 만들었다. 요즘의 과학자들도 감히 단언하기 어려운 태초의 상태를 노자는 서슴없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놀라운 코스몰로지(Cosmologyㆍ우주론)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우주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조물주가 있었다면, 그 조물주는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이 논리적 모순에 대응하기 위해 '그 태초의 존재'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른다고 못 박았다. 이 태초의 존재는 당시 사람들이 조물주라 여겼던 상제(上帝ㆍ하느님)보다 더 먼저였다고 노자는 주장한다. 즉 조물주를 한 단계 더 위로 물려놓은 것이다. 이렇게 논리구조를 세운 까닭은, 상제(上帝)는 인간이 상정해놓은 위대한 통치자이기에 우주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하느님은 '인간중심'이다. 하지만 도(道)는 그보다 더 원천적인 것이며, 인간을 만물의 '원오브뎀(one of them)'으로 본다. 이 점이 핵심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도(道)를 그릇으로 비유한 것은, 용기(容器)의 바깥을 이루는 물질적 측면을 주목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허공이라는 '빈 곳의 쓰임새'를 가리킨 것이다. 그릇 속의 우묵한 빈 곳이 도와 닮았다는 이 생각은, 우주론의 블랙홀을 표현해낸 것이 아닐까 싶다.

노자가 우주 조물주라는 낯선 개념을 도(道)라는 이름으로 공들여 소개하고 있는 까닭은 뭘까. 당시로선 우주 조물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지평도 만들어져 있지 않았을 테고, 또 도(道)라는 말은 도리나 가치 체계 같은 의미로 유학자들에게 쓰이고 있던 때였다. 나는 이것이 노자의 개념 파괴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 체계를 강요하는 키워드인 도를 뒤집어, 하느님보다 더 근원적인 자리에 존재하는 조물주가 우주와 세상에서 조물(造物)한 방법이 바로 도라고 역설하는 것이다. 여기서 노자가 말하려는 생각이 힘 있게 드러난다. 그는 우주를 창출한 조물주가 하는 것처럼, 세상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너무 거창한가. 아니다. 알고 보면 전혀 거창하지 않은, 아주 치밀한 '리더십 모델'을 내놓기 위해 이렇게 '썰'을 먼저 풀어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가가 이렇게 물으며 관심을 붙잡는다. "혹시, 도를 아십니까."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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