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여담]증권맨 가족 잔혹사, "아들, 내자리를 부탁해"

[아시아경제 이정민 기자] 학창시절부터 아버지를 이어 증권 전문가가 되겠다고 다짐한 취업준비생 김증권군. 얼마 전 아버지 회사에서 신입 직원을 공개채용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장 이력서를 넣었다. 한고비 한고비 넘어 임원 면접까지 별 탈 없이 마친 김군은 조금 있으면 아버지와 같이 일할 수 있겠다는 꿈을 키우며 합격자 통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도 이제야 돈벌이 하겠다며 좋아하셨다.

그러던 중 듣게 된 비보. 아버지 회사에서 부장급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는 소식이었다. 지난해 희망퇴직 때 주위 눈치 보며 끝까지 버틴 터라 이번엔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이제 좀 쉴 수 있겠다는 아버지 말에 김군은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아버지 자리를 빼앗아 취업에 성공한 아들이라는 주제의 이 드라마는 A 증권사 직원 사이에서 있을 법한 스토리다.

이 증권사는 지난해에 이어 1년 6개월만에 희망퇴직 카드를 꺼내 직원들에게 절망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안겼다.

경쟁력 강화가 희망퇴직 배경이다. 회사는 "글로벌 시장 악화로 내년 어려운 경영환경이 예상된다. 이런 위기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안정적인 경영기반을 구축하고 중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희망퇴직을 실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청년취업 이야기를 덧붙였다.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의 기회를 부여해 인력 구조를 개선하고 청년인턴 등 청년고용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미 희망퇴직을 염두에 둔 듯 지난 9월 신입 직원 공개채용에 나섰다.

희망퇴직 대상은 부장급 직원과 차장급 이하 직원 중 근속기간 7년 이상인 직원들이다. 한창 자식 뒷바라지 할 나이다. 근속 연수에 따라 10개월에서 최대 27개월의 특별퇴직금이 지급되지만 가정에서 가장의 직업 유무 차이는 크다. 회사는 이미 지난해 149명의 아버지들을 고맙게도(?) 집으로 돌려보냈다.

직원들의 사기는 뚝뚝 떨어지고 있다. 여의도 증권가에선 이번 사례를 계기로 희망퇴직 분위기가 다시 퍼질 것이라며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는 자식들의 마음은 어떨까. 반백년 생을 앞둔 백수 아버지 마음보다 더 할까 싶다.



이정민 기자 ljm1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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