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세계은행(WB)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표한 기업환경 평가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조사 대상 189개 국가 중 4위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정작 우리나라 국민과 미디어의 반응은 황당한 순위라며 세계은행의 평가 방식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최근 금융개혁을 주장하며 우리나라의 금융 경쟁력이 아프리카의 빈국 우간다 보다 못 하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최 부총리의 발언대로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 9월 말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하면서 우리나라의 금융 경쟁력 순위를 우간다(81위)보다 낮은 87위로 매겼다. 권위있는 국제기구들이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국가 경쟁력 평가 결과를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국가는 기업과 달리 단순한 지표 하나로 핵심 내용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경쟁력 개념을 국가에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애당초 국가 경쟁력 평가라는 발상 자체가 무리수라는 비판이다.
크루그먼 교수의 표현처럼 세계은행의 세부 방식은 제도적 측면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세계은행 기업환경 평가 항목은 창업·건축 인허가·전기공급·재산권등록·자금조달·소액투자자보호·세금납부·통관행정·법적분쟁해결·기업 퇴출 등 10개 분야다. 세계은행은 이 10개 항목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해 기업이 들이는 시간과 비용만을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우리나라가 세계 1위로 평가 받은 전기공급의 경우 전기 사용 전 검사, 전기연결 신청 및 계약, 외선공사·계기설치·송전 등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 정도만 평가했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취약한 노동 분야나 규제에 대한 평가가 반영되지 않다 보니 순위가 체감 수치 이상으로 높게 나오는 셈이다.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스티븐 자코비 제너럴 모터스(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지난 9월 말 한 기자회견에서 "한국GM의 감산이 필요하지만 노조와 노동법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자코비 사장의 말은 세계은행의 평가와 달리 한국에서 기업하기가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외국계 기업 201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투자환경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도 투자여건이 열악하다는 응답이 55.2%로 과반을 넘기도 했다.
세계은행보다 좀더 넓은 범위에서 국가 경쟁력을 평가하는 국제경영개발원(IMD)이나 세계경제포럼(WEF)은 우리나라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IMD가 평가한 우리나라의 전체 국가경쟁력 순위는 25위로 중위권에 머물렀다.
IMD의 경우 올해 창업절차와 창업일수 평가에서 우리나라를 조사대상 61개국 중 각각 4위, 7위로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한국의 관세장벽 순위는 57위로 최하위권이었고 설문을 통해 조사가 이뤄진 법과 제도의 기업경쟁력과 경제변화에 대한 정책대응력 평가 항목 역시 각각 48위, 45위로 박한 평가를 받았다. 노동 분야와 관련해서도 근로자 동기부여 항목에서 54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WEF 평가에서도 우리나라는 기업혁신에서 19위로 좋은 평가를 받은 반면 노동시장 효율성과 금융시장 성숙도에서 각각 83위, 87위의 낮은 평가를 받았다. 전체 순위는 조사대상 140개국 중 26위였다.
이 같이 국가 경쟁력 평가가 오락가락 하다 보니 무용론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크루그먼 교수는 국가 경쟁력 평가가 무용할 뿐 아니라 부작용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전체 국가경제와 다수 국민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 하고 되레 일부 산업이나 기업의 특혜로 연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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