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정치인들의 화법에는 항상 여지가 남아 있다. 의미를 전달하더라도 딱 부러지지 않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게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인을 취재하는 기자입장에서는 발언을 놓고 이리저리 재야하니 늘 발언을 분석해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단정적인 발언을 자제하는 이유는 5선 경력의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지난해 6ㆍ4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 내에서 중진차출론이 제기됐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었던 남 지사는 도지사직 도전을 회피했다. 당에서도 압박이 상당했고 언론도 남 지사 출마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는 당에 남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이같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도지사후보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딱 부러지는 선언을 절대 하지 않았다.
물론 남 지사가 불출마 선언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당내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이참에 지방선거 불출마 선언을 할까"라며 당으로부터 가해지는 스트레스에 대한 심적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정치인은 단정적으로 얘기해서는 안된다"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정치지형상 단정적으로 말했다가 어떤 역풍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점을 다선의 정치감각으로 파악한 것이다.그의 속내가 도지사직에 관심을 뒀는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결국 당의 압력을 못 이겨 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만약 불출마선언을 했더라면 도지사 후보 출마를 받아들였더라도 "말을 뒤집었다"며 상대후보의 공격을 받았을 게 뻔하다.
남 지사의 교훈은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 여당에서도 유효하다. 내년 총선 공천에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에 정치생명을 걸겠다" "전략공천은 단 한 석도 없을 것"이라고 확언하면서 '무대' 리더십을 끌어올렸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당론으로 정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발언에 확신이 실리니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이는 여론의 호응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같은 단언(斷言)은 곧 역풍이 됐다.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한 오픈프라이머리는 지난 추석연휴 기간에 야당과의 협상을 통해 전화여론조사 국민공천으로 바뀌었고, 전략공천은 없지만 우선추천을 거론하면서 당내 논란을 촉발했다. 당초 주장을 뒤로 물리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당내에서는 "지나친 소신이 결국 자충수가 됐다" "대표가 방향만 가리키면 되지 구체적인 방법까지 언급해 사달이 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김 대표가 과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 공천은 전부 사천'이라고 했다"며 김 대표의 단언이 습성이라는 점을 부각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요즘 공천룰 얘기만 나오면 "그만합시다"며 말문을 닫기 일쑤다. 소신 발언의 역풍을 침묵으로 막는다. 김 대표는 때가 되면 발언을 재개할 것이다. 하지만 경험치를 감안해 발언수위는 크게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다시 어떤 발언으로 '오픈프라이머리와 리더십'이라는 집나갈 위기에 처한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지 관심이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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