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절반 상속재산 없는 빈곤층·세대간 갈등 조장 우려 [아시아경제 원다라 기자]
#1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살고 있는 이모(85ㆍ여)씨. 그는 지난 2009년 자녀들에게 집과 임야를 모두 증여했다. 복잡한 재산 문제를 빨리 정리하고 마음 편하게 여생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막상 재산이 넘어가자 상황은 달라졌다. "자주 찾아뵙겠다"던 차남(60)은 상속을 받자마자 연락이 두절됐다. 그 사이 논ㆍ밭은 경매로 넘어갔다. 평생을 맨손으로 일궈 온 재산은 그렇게 남의 손에 들어가 버렸다.#인천시에 홀로 살던 박모(84ㆍ여)씨. 그 역시 귀향의사를 밝힌 아들(60)에게 모든 재산을 증여했다. 하지만 "잘 모시겠다"던 아들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돌변한 아들은 박씨에게 수시로 폭행ㆍ폭언을 자행했다. 결국 박씨는 집을 나와 노인전문보호기관에 이를 신고했다.
재산을 물려받은 자녀가 부모의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상속재산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불효자 방지법'이 발의된 후 노인은 물론 젊은 세대들도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녀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다며 기대하는 측과 부모와 자녀간 갈등을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이 교차한다.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시민과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9월 발의한 불효자 방지법은 박씨 사례처럼 상속 후 학대가 노골화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민병두 의원은 "외국의 경우 증여를 받은 자(수증자)가 증여자에 대해 배신ㆍ망은(忘恩) 행위를 하면 증여 해제 사유가 된다"며 우리 민법의 개정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법안만으로 노인 빈곤ㆍ학대문제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속해 줄 재산이 있는 노인에게나 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1일 사회공공연구원이 발표한 '국제비교로 본 우리나라 노인빈곤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노인층(65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49.6%로 34개 OECD국가 평균의 4배에 이른다. 또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국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 시민들은 법안을 환영하면서도 사회적 시스템을 보강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노인의 날'을 앞두고 1일 서울역에서 만난 김모(90)씨는 "재산을 미리 주면 굶어죽고, 안주면 맞아죽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그냥 하는 말만은 아닌 것 같다"면서 "그렇지만 법으로 증여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은 부모와 자식을 계약관계로 만드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자녀세대에 봉양을 강요하기보다는 노인들도 스스로 생활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 사회적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견해를 보인다.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은 "노인복지 문제는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을 갖춰야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부모ㆍ자식간의 신뢰회복은 물론, 이웃간의 신뢰를 통해 공동체적인 돌봄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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