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가족을 위한 약속 '앉아 쏴'

류정민 사회부 차장

류정민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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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쏴' '앉아 쏴'…. 군대 시절 사격 훈련장 얘기일까. 남자들의 비밀 얘기인 것은 맞다. 하지만 무대가 다르다. '국방색' 가득한 훈련장이 아니라 지극히 은밀한 사적 공간에 대한 얘기다. 남성이라면, 특히 결혼한 남성이라면 공감할 바로 화장실에 대한 얘기다.

요즘 화장실 변기에 앉아 빙긋이 웃을 때가 있다. 남에게 공개하지 않은(아내조차 모르는) 나만의 작은 실천 때문이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뿌듯한 느낌도 드는 오묘한 기분이랄까. 40년간 익숙했던 '서서 쏴' 자세를 '앉아 쏴' 자세로 바꾼 뒤 경험하는 기분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호기심이 배경이었던 것 같다.

일어선 자세로 변기 커버를 올리고 소변을 보는 자세는 너무나 익숙했고, 편안했다. 아니 그게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왔다. 언젠가 아침 TV 방송에서 '앉아서 소변을 보는 남자'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참 세상을 어렵게 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때까지는 아내의 '앉아 쏴' 요구의 속뜻을 알지 못했다. 나는 너무나 무지(無知)했고 다른 남성도 나처럼 '서서 쏴'를 고집할 것이라고 쉽게 단정했다.

그것 역시 나의 무지였다. 생각보다 많은 남성(특히 결혼한 남성)이 '앉아 쏴'로 자세를 바꾸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흩뿌린 물방울 파편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자세변화로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일어선 자세로 소변을 보면 변기에 제대로 조준을 하더라도 수많은 '파편'들이 화장실 바닥에 튄다고 한다. 심지어 세면대까지 튀고, 칫솔에도 파편의 흔적이 남는다고 한다.

잠결에 소변을 보다가 조준을 못 해서 야기된 참상까지 생각한다면 아찔할 따름이다. '앉아 쏴' 자세는 위생 관리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배뇨 장애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위생이나 건강을 고려할 때 답은 간단한 것 같지만 습관의 변화가 쉬운 문제는 아니다.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남성의 소변 자세는 논쟁의 대상이다. '서서 쏴'를 남성의 자존심으로 여기는 인식도 자세 변화를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다.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이지만, 행동의 결과물은 자신은 물론 가족에게도 영향을 준다. '물방울 테러'로 가족 건강에 위협을 주는 행동을 계속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가족을 위한 자신만의 은밀한 약속, 그 유쾌한 '감염'이 남성들 사이에 널리 퍼지길 희망해본다.





류정민 사회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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