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축구는 사람이다
축구와 사람에 대해 쓰겠다. 나는 지난 1월 30일에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호주와의 2015년 AFC 아시안컵 결승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아시안컵 준우승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참담한 결과를 얻고 돌아온 대표팀에게서 기대하지 않은 결과였다. 이 무렵 대표팀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불공평하다는 비판을 받은 선수 선발, 전문가도 아마추어도 동의하기 어려울 만큼 내용이 빈곤한 경기 등이 팬들을 실망시켰다. 그렇기에 이 팀을 수습해 홈팀 호주와 아시아 정상을 다툰 울리히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축구팬들의 호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적어도 이 무렵 축구팬들은 슈틸리케 감독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감하거나 열광했다. 만약 우리 대표팀이 우승을 했다면 '슈틸리케 신드롬'은 2002년의 '히딩크 열풍'을 무색케 했을 것이다. 당분간, 아니 적어도 내 생애 안에 대한민국 축구가 월드컵 4강에 다시 들 수 있으리라는 상상은 하기 어렵다. 그만큼 한국 축구에 관한 한 거스 히딩크의 업적은 신성불가침의 가치를 지닌다. 슈틸리케는 히딩크만한 업적을 쌓지 않고도 신드롬을 일으킨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에 속한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오랫동안 스포츠 기자로 일했고, 학자로서는 구술사와 미시사에 관심이 있는 내가 슈틸리케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나는 우리 축구 최초의 외국인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에크하르트 크라우춘에 대해 연구해 논문을 발표한 경험도 있다. 나는 슈틸리케를 통하여 우리 축구와 세계 축구를 생각해보고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그러니 나는 사람에 대해 또는 사람을 통하여 축구를 말하겠다.
내가 쓰려는 축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나이의 경험 속에 깃들인 축구이고, 2002년 이전까지 세계 축구의 중심이란 그저 신의 영역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축구 후진국의 축구이며, 그렇기에 순정을 간직한 가슴에 숨겨둔 불씨와도 같이 언제든 화염을 뿜어낼 꿈을 꾸는 그런 축구다. 또한 1976년 9월 11일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5분 만에 세 골을 넣고 훗날 독일에서 '차붐'이라는 전설로 남는 영웅을 노래로 숭배하던 서울 소년의 축구다.
내가 우리 축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응원해 마땅한 유일한 팀, 대안 없는 선택으로서 내 영혼을 볼모로 잡힌 붉은 축구에 대한 고백이 허물은 아니리라. huhball@
■ 허진석은…동국대 대학원에서 제3공화국 체육정책을 연구해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포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문적 글쓰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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