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아웃도어 오너들, 山을 사랑하는 세가지 방법

백두대간의 한 축인 구름 속의 지리산 전경.

백두대간의 한 축인 구름 속의 지리산 전경.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산은 인생의 도장(道場)'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과 산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어느 모로 보나 모양새가 비슷하다. 높고 낮은 고개를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다다른다. 누구나 산을 찾으면 꼭대기에 오르려 하지만, 결국은 정상을 밟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다. '크게 성장하거나, 조용히 사라지거나'다. 산의 곁에서 인생과 경영의 정상을 향하는 최고경영자(CEO)들이 있다. 아웃도어 업계의 오너 경영인들이다. 닮은 듯 다른 이들의 '산 이야기'를 들어본다.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대장간産 아이젠을 신고 셔터를 누르다=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과 산의 인연은 고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어릴적부터 소요산이나 북한산을 즐겼다. 66학번으로 서울대 무역학과에 진학한 이후엔 설악산과 지리산을 다녔다. 등산장비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당시 그는 남대문 시장에서 군수품을 사고, 대장간에서 아이젠을 만들어 신었다. 그런 그에게 산의 또 다른 매력을 알게 해준 것이 '카메라'다. 고등학생 때부터 용돈을 모아 카메라를 사기 시작한 그는, 대학 산악반에 입부해서도 사진에 심취했다. 동기들에게도 '사진사'로 통했다.
그러나 사진에만 심취하기엔 그의 기질은 남달랐다.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다. 그의 조부는 1920년대 경남 마산에서 미곡을 수출했고, 선친은 창녕에서 양파종자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성 회장은 지근거리에서 이를 지켜보며 어린시절부터 장사와 조직관리를 체득했다.

'사업꾼'이었던 윗대로부터 배운 또 다른 하나는 아마도 '자기관리'. 그는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꼼꼼한 원칙주의자, 이른바 '철벽맨'이다. 바이어 접대 때에도 술을 입에 대지 않고, 골프도 칠 줄 모른다. 직원을 뽑을 때도 '담배를 피우지 않을 것, 영어를 잘할 것, 그리고 정직할 것'을 기준삼는다. 한 인터뷰에서 "사업하는 사람이 대범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별로 좋은 것 같지 않다"고도 했다.

◆한라산이 품었던 섬소년, 블랙야크를 키우다=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은 국내 아웃도어 1세대 최고경영자(CEO)이자 산악인이다. 일주일에 한번은 북한산이나 관악산 등 국내산을 오르고, 일년에 한 두번은 히말라야를 찾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강 회장에게 산은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라산이 보이는 제주 예래마을 바닷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라산을 오르내리며 자란 덕에 산은 터전이자 삶 자체였다.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마다 '한라산'을 떠올리면 힘이 됐다. 넓은 바다와 한라산의 웅장한 남벽은 1973년 종로5가에 문을 연 3평짜리 사무실과 10평짜리 공장을 연매출 6000억원의 '블랙야크'로 성장케 한 토양이 됐다. 그래서 강 회장에게 '한라산'은 '처음과 끝'이다.
1993년 처음 마주한 히말라야 설산과 그곳에서의 생활은 강 회장 인생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산에 다니면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사람이 살아가는 법칙을 배웠다. 그는 "산이 아니었으면 오랜 시간, 많은 방황을 했을 것"이라면서 "산으로 인해 급한 성질 또한 다스릴 수 있었고, 경영에 있어서도 오버 페이스를 막아줬다"고 말했다.
2009년 낭가파르밧 원정 당시 강태선 대장(좌),  프랑스 샤모니 자연암벽 등반에 나선 정영훈 K2코리아 대표(우)

2009년 낭가파르밧 원정 당시 강태선 대장(좌), 프랑스 샤모니 자연암벽 등반에 나선 정영훈 K2코리아 대표(우)


그래서 강 회장은 회사 신입사원들도 산에서 뽑는다. 지난 2013년부터 시행중인 블랙야크의 '산행면접'은 업계에서도 독특하기로 꽤나 유명하다. 지원자들은 오전부터 면접관들과 함께 산을 오르며 화합ㆍ도전정신, 참여도, 조직적응력, 순간 대처능력 등을 평가받는다. 간단한 필기시험이나 텐트 설치 과제도 산에서 이뤄진다. 강 회장은 "산행은 장시간 체력소모가 많은 만큼 서로 간의 배려심도 엿볼 수 있다"면서 "스펙 뒤에 숨겨진 다양한 지원자들의 장점을 발굴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자신도 산에서 '관용'과 '베품'을 체득했다. 가끔은 잔인하리만치 매섭고 냉정한 곳이 산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내어주고 베푼다. 강 회장이 '블랙야크강태선나눔재단'을 별도로 설립해 운영중인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4월 말 네팔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자, 아웃도어 업계에서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선 그다. 강 회장은 1, 2차에 걸쳐 총 12억원 규모의 물품과 성급으로 네팔 지진 피해복구를 지원했다.

◆경영은 '거친 암벽'…정상에 도전한다 = "거친 암벽을 오르는 순간, 그 누구보다도 강한 나 자신을 발견한다". 정영훈 K2코리아 대표에게 산은 '도전'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창업자인 아버지(고 정동남 회장)로부터 덜컥 물려받은 순간부터 회사는, 그리고 산은 그에게 도전하고 넘어야 할 존재였다.

그래서 암벽등반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정 대표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항상 존재하는 암벽등반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도전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우리의 삶과 닮았단다. 프랑스 샤모니 몽블랑(4810m) 지역의 설벽과 암벽루트를 등반했으며, 국내 암벽등반의 메카로 이름난 북한산 인수봉과 설악산에 있는 다양한 등반루트도 올랐다. 등반에 대한 열정으로 직접 클라이밍 센터(K2 C&F)까지 세웠다.

지난 2009년 국내 클라이밍 문화 확산을 위해 설립된 K2 C&F는 난도가 가장 낮은 수직벽뿐만 아니라 여러 경사도의 인공암벽을 갖추는 등 국내 최고 시설을 자랑한다. 정 대표는 "클라이밍은 화려하게 뭔가를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암벽을 오를 때는 동작을 작게 해야 하고 홀드를 잡고 버티는 손가락 힘이 중요한 만큼 자신과의 싸움이 중심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직원들과의 산행에서는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그다. 회사 임직원들과 정기적으로 갖는 산행코스는 주로 정 대표가 직접 선택하는데, 최우선 조건은 '즐거움'이다. 다리가 파르르 떨리는 암벽이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코스'에서 그는 직원들과 함께 '도전'을 도모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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