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어느 거물급 정치인의 '출마'

[아시아경제 전슬기 기자]국회의원들은 뱃지를 향한 일념으로 치열한 선거 경쟁을 뚫고 국회에 입성한다. 하지만 피와 눈물도 없는 지역구 탈환 경쟁에서 '쉬운 지역구'라는 곳이 존재한다. 당의 깃발만 꼽으면 당선된다는 여야의 정치적 텃밭이다.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24일 대구 수성갑 선거구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를 통해 국회에 입성하겠다는 뜻이다. 대구는 여당의 정치적 텃밭이다. 새누리당의 현수막만 있으면 당선된다는 곳에 거물급 정치인이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거물급 정치인의 '쉬운 지역구' 선택은 곧장 반발을 일으켰다. 같은 지역에 총선을 준비 중인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대권에 도전하려면 새누리당이 약한 지역에 한 석이라도 더 견인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일갈했다. "김 전 지사가 대권 디딤돌로 대구를 이용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김 전 지사가 바로 직전 당의 혁신위원장을 지냈다는 사실도 배신감을 키웠다. 김 전 지사는 전략공천을 없애고 국민공천제를 도입하는 혁신안을 진두지휘해왔다. 공천을 국민께 돌려드린다는 그가 당의 텃밭을 타고 뱃지를 달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그를 향한 해명이 있긴 하다. 대구 수성갑이 '쉬운 지역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잠룡인 김부겸 전 의원(옛 민주통합당)이 이 지역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 전 의원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 40.4%의 높은 지지율을 얻은 지역주의 타파의 상징이다. 김 전 지사 정도의 급이 아니면 김 전 의원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예측이다. 이군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기자를 만나 "대구 수성갑에 김부겸이 나오면 쉬운 지역이 아니다. 김문수 정도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전략적 이유가 있더라도 그의 선택은 여전히 반갑진 않다. 대구에 특별한 연고가 없는 김 전 지사는 작년에 대구지역 택시 면허를 취득했고 직접 민심 속으로 파고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택시 대신 '꽃가마'를 타고 국회에 입성하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거물급 정치인의 출마 선언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은 채 끝났다.




전슬기 기자 sgj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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