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여기는 평택·동탄…메르스보다 무서운 '포비아'

병원들도 적막…

[동탄ㆍ평택 =지연진 기자, 유제훈 기자] 지난 2일 국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감염자가 대거 발생한 경기도 평택의 B병원 앞. 굳게 닫힌 철문에는 "당 병원은 감염병 확산방지를 위해 당분간 휴원하였으니 많은 양해 바랍니다"라는 휴원 안내문이 붙어있다.

한낮인데도 혼자다니기 거북할 정도로 적막감이 감돌았다. 평택 중심가에서 3㎞ 가량 떨어진 외각에 위치한데다 병원 주변의 약국과 편의점까지 문을 닫으면서 인적이 끊긴 탓이다. 감염병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문형표 장관이 지난 달 29일 대책회의에서 "개미 한 마리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자세로 메르스에 대응하겠다"고 공언한 순간이 오버랩됐다.

올해 2월 400병상 규모로 개원한 B병원은 지난달 31일부터 문을 닫았다. 병원 주변 상권은 물론이고 '메르스 공포'가 뒤덮은 평택 지역경제가 초토화됐다. 팔리는 것은 일회용 마스크와 손소독제, 발열 검사를 위한 체온계 등 3개 밖에 없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평택터미널 앞 약국 직원 이모씨(41ㆍ여)는 "오늘 점심 때 들어온 일회용마스크 200개가 1시간만 다 팔렸다"라며 "공급도 부족한지 이틀 뒤에나 다시 들어온다"고 말했다. 기자가 머물던 5분 남짓동안 손님 3명이 마스크를 구매하러 들어왔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의료용 N95마스크는 오래전 품절됐고, 일반 마스크도 구하기 힘들었다.실제 평택 시내에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이상할 정도였다. 메르스 첫 확진환자는 물론 감염자가 무더기로 발생한 지역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불안감이 극에 달한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병원 주변의 상권은 최악의 경기로 시름했다. 인터넷에 메르스 환자가 거쳐간 것으로 알려진 한 병원 앞 식당은 이날 점심시간 손님이 4개 테이블에 불과했다. 약국은 매출이 3분의1로 줄었고, 김밥가게 매출도 반토막났다. 건너편 슈퍼는 이날 선물용 음료수박스가 한 개도 안 팔렸다. 의료기기 매장의 사장 신모씨(46)는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이 아예 없다"면서 "입원하는 환자도 퇴원하는 마당에 외래 환자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메르스 환자가 거쳐간 평택의 또 다른 병원은 외래환자가 뚝 끊겼고, 입원환자의 퇴원이 속출하고 있다. 20일 전 교통사고로 이 병원에 입원한 남모씨(92)는 "90년을 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하다"며 "메르스 환자가 있던 8층은 아예 올라가지도 못하고, 많은 환자들이 퇴원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메르스 첫 사망자가 나오면서 혹시나 모를 감염을 우려한 시민들이 종적을 감췄고, 가뜩이나 불황에 시달려온 상권도 급냉각되는 분위기였다.

메르스 환자로 밝혀진 이모(58ㆍ여ㆍ25번째 확진환자)씨가 숨진 동탄 A병원 주변 상권은 초토화됐다. 병원 앞 분식점에서 일하는 오모(40ㆍ여)씨는 "메르스 사망자가 나타나면서 하루 이틀 새 손님이 3분의 1이나 줄었다"며 "나 자신도 불안해 마스크를 쓰고 싶지만 손님 응대 때문에 그럴 수도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도 "하루 이틀만에 손님이 줄어든 것도 걱정이지만, 사망 소식이 퍼지면서 초등학교ㆍ유치원이 휴업하는 등 분위기가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걱정했다.

동탄지역의 중간 규모 번화가인 은행사거리에서 만난 시민 이모씨(36)는 감염이 걱정돼 4살 난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메르스 발병 이후로 외식은 물론 사람이 많은 장소에는 가지 않고 있다"며 "오늘은 아이가 답답하다고 해서 나왔는데,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더 조심스러워진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자리를 찾아보려 했는데 메르스가 터지고 나서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동탄지역에서 만난 주민들 사이에선 메르스 환자 사망소식과 지역 고용의 상당 수를 차지하는 대기업 직원의 메르스 확진 판정설(說)이 떠돌고 있었다. 불안감 탓인지 이날 화성시 일대에서만 22곳의 초등학교와 7곳의 유치원이 휴업을 선택했다.

A병원과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B초등학교 관계자는 "사망소식이 알려지면서 오전부터 학교 운영위원들이 예방적 차원에서라도 휴업해야 한다는 우려를 내 놓으면서 5일까지 휴업에 들어가게 됐다"며 "신도시 지역인 만큼 학교 간 거리가 200~300m 내외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지역 학교 중 휴업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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