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중문화지 롤링스톤과의 1978년 인터뷰 전문…'수전 손택의 말'
수전 손택 1979년 뉴욕 출판사 사무실에서 (사진제공: 마음산책)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뉴욕 지성계의 여왕',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20세기 미국의 지성'… 수전 손택(1933-2004)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그는 소설가이면서도 뛰어난 에세이스트였고, 연극과 영화 연출에 일가견이 있으면서도 냉철한 평론가로서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베트남전 반대운동과 9.11 이후 미국의 대(對) 테러전에 대한 비판 등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손택의 면모를 가감없이 보여줬다.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다",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인간은 모두 관음증 환자다" 등 그는 전생에 걸쳐 전투하듯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지고 일침을 가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의 말과 글뿐만 아니라 개인 자체에도 열광했다. 미국 버클리대와 시카고대, 하버드대, 파리대학교 등 최고의 대학에서 수학한 천재적 면모, 매력적인 외모와 지적인 말투, 짧게 끝난 불행한 결혼 생활과 이후의 동성애 고백, 토론과 논쟁을 즐기는 강단,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경계를 오가는 자유로운 취향 등은 수전 손택을 "도저히 범주화할 수 없는 불세출의 캐릭터"로 만들어놓았다. 2004년 골수성 백혈병으로 일흔하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나온 각종 회고록이나 평전 등도 그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짐작케 한다.그 중에서도 신간 '수전 손택의 말'은 40대인 수전 손택이 1978년 미국 대중문화지 '롤링스톤'과 12시간에 걸쳐 가졌던 긴 인터뷰 전문을 담은 책이다. 인터뷰가 진행될 당시 마흔 다섯이었던 손택은 인생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었다. 전해인 1977년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사진에 관하여'를 내놓아 한창 문화예술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었고, 또 다른 역작 '은유로서의 질병'의 출간도 마무리된 시점이었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1974년 유방암 선고를 받은 손택이 수술과 투병으로 보낸 2년여의 시간 동안 구상한 책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롤링스톤'의 에디터 조너선 콧(73)은 "손택이 문장이 아니라 정연하고 여유로운 문단으로" 말했으며, 그의 말투는 "명료하고 권위적이고 직접적"이었다고 고백한다.
수전 손택의 말
'파리와 뉴욕, 마흔 중반의 인터뷰'란 부제를 단 이 책에서 둘의 대화는 문학과 영화, 음악, 사회, 성, 사랑, 여행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든다. 힘든 투병 생활을 마친 후 손택은 말한다. "내가 원하는 건 내 삶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에요. 지금 있는 곳에, 자기 삶 '속'에 자기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온전한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말입니다." 자신의 병에 대해서도 "희생자라는 느낌을 받는 게 싫고, 최대한 책임감을 갖고 싶다"며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 그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앓아눕게 됐나 걱정해봤자 별로 의미가 없다.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면, 최대한 합리적으로 올바른 치료를 모색하고 진심으로 살고자 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재혼 등으로 인해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것으로 알려진 손택이 문득 자신의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얘기할 때는 인간미마저 느껴진다. 어린 시절 하루에 책을 한 권씩 읽었다는 손택은 "독서는 내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며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라고 털어놓는다. 여러 곳을 전전하며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한 씁쓸한 기억은 "기원으로 회귀하고 싶지 않다. 나로서는 돌아갈 곳도 없고, 돌아가 봤자 뭘 찾게 될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평생을 도망치면서 살았다"는 고백으로 이어진다. "전 자신을 스스로 창조했다는 생각을 해요. 그게 저한테는 효과가 있는 착각이에요"라며 스스로를 위무할 때나 "아무도 수전 손택이라는 걸 알지 못하게 필명을 가지고 출판하는 것에 대한 판타지"를 말할 때는 장난기도 느껴진다.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특유의 냉철함을 잃지 않는다. 남성-여성, 젊음-늙음, 더 나아가 사유와 감정을 구분짓는 이분법에 대해 비판하면서 "모든 것들의 분리를 철폐하자"고 주장할 때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날이 서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거짓되고 선동적인 해석들을 파괴해야만 한다. 나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바 작가의 소명은 온갖 종류의 허위에 맞서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는 소명을 다했고,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말은 여전히 살아있다. 40여년 전 진행된 이 인터뷰가 이 시대에 읽어도 새롭고, 혁신적이기까지 한 것처럼 말이다. 조너선 콧은 손택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사고하는 삶을 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사고하는 일이 상호보완적이며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활동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걸출한 모범사례다."
(수전 손택의 말 / 수전 손택, 조너선 콧 /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1만45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