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 고비 넘긴 비법…타이밍, 진심, 여론

졸속입법 위헌시비 논란 속 '시행 당위성' 힘 실려…'벤츠 여검사' 사건도 김영란법 필요성 높여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시행하면서 부패문화를 바꿔보고 그래도 개선이 안 되면 보다 더 강화된 조치를 취하는 게 순리다.”

지난 10일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서강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김영란 전 위원장은 대법관을 지낸 법조인 출신이다.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가 현재 직책이다. 법조인 출신답게 탄탄한 법적 근거와 논리로 김영란법에 대해 접근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기자회견이었다. 하지만 “시행하면서 바꿔보고 개선이 안 되면 강화된 조치를 취하자”는 김 전 위원장 설명은 ‘법조인’보다는 ‘정치인’의 화법에 가까웠다.

이처럼 김 전 위원장은 법조인과 정치인의 영역을 넘나들었다. 그는 김영란법의 좌초와 연착륙을 가르는 경계선에서 위태롭게 서 있었지만, 여론을 향해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한국사회가 특히 공직사회가 이제 부패와 결연히 단절하는 새로운 시대로 가야 한다는 당위성과 명분이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10일 서강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영란법'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10일 서강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영란법'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여론은 김 전 위원장의 편이었다. 정치권, 법조계, 언론계에서 김영란법 비판론이 불거질 때마다 변론에 힘을 실었다.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한국갤럽이 3월10~12일 전국 성인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를 벌인 결과, 김영란법 국회통과가 ‘잘된 일’이라는 응답은 58%로 나타났다. ‘잘못된 일’이라는 응답은 21%에 머물렀다.

여론이 부패척결이라는 당위성만으로 손을 들어줬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권익위원장 시절부터 ‘김영란법’ 추진에 적극성을 보였던 김 전 위원장의 진심이 여론을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유사한 주장을 특정 정치인이 했다면 여론을 하나로 모으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정치권, 법조계, 언론계 등의 비판과 반발을 넘어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법관 출신인 김 전 위원장의 행동에는 ‘정치적 야심’이 엿보이지 않았다.

여론은 김 전 위원장이 사심 없이 ‘김영란법’ 추진에 앞장서는 것으로 판단했고, 적극적인 응원으로 화답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5일 헌법재판소에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5일 헌법재판소에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김영란법은 김 전 위원장 스스로 ‘반쪽 법안’이라고 지적할 정도로 완벽한 법안과는 거리가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도 법리적인 검토를 거친 판단이었다.

한국기자협회는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했던 3일 성명을 통해 “김영란법이 위헌 소지가 있는 문제투성이 법안이라는 각계 전문가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야 정치권이 충분한 법리 검토 없이 통과시켰다”면서 내년 총선을 의식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김영란법은 국회를 통과한 직후부터 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대다수 언론이 김영란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조를 보였다.

김 전 위원장은 말을 아꼈다. 그는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4일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인천공항을 통해 프랑스 파리로 출국했다. 이날은 대한변협이 김영란법은 ‘위헌무효’라면서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밝힌 날이다. 대한변협은 5일 헌법재판소를 통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상황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김 전 위원장 견해는 관심의 초점이었다. 김 전 위원장은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한지 일주일 만인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견해를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타이밍’은 절묘했다. 모두들 김 전 위원장이 어떤 견해를 밝힐지 주목하던 시점에 기자회견이 열렸다.

특히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이 김영란법에 포함된 것에 대한 그의 견해는 궁금증을 집중시켰다. 그는 분명한 어조로 자신의 뜻을 밝혔다.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답변이었다.

김 전 위원장의 기자회견 메시지는 분명했고, 여론은 호응했다.

'김영란法' 고비 넘긴 비법…타이밍, 진심, 여론

김 전 위원장 기자회견 직후 ‘벤츠 여검사’ 사건에 대한 대법원 상고심 판결이 나왔다. ‘벤츠 여검사’로 불리는 이모 전 검사는 내연관계인 최모 변호사에게 다이아몬드 반지, 까르띠에 시계, 모피 롱코트 등을 받았다. 각각 3000만원, 2000만원, 1000만원대 선물이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가 100만원이 넘는 금품을 받을 경우 대가성이나 직무관련성과 무관하게 형사 처벌을 받게 돼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12일 벤츠 여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법원은 벤츠 여검사가 받은 선물은 ‘사랑의 정표’라는 논리로 무죄를 확정했다. 국민 상식과는 한참 동떨어진 판단이었다.

김 전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흔들리던 김영란법의 중심을 잡았다면 ‘벤츠 여검사’ 사건 판결은 김영란법의 존재이유를 되새긴 사건이었다.

앞으로 김영란법의 미비점에 대한 법적보완 주장은 계속되겠지만, ‘원점 재검토’ 주장을 내놓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영란법을 둘러싼 반발 움직임도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이다.

김 전 위원장의 진심, 적절한 기자회견 타이밍, 여론의 든든한 지원이 맞물리면서 김영란법은 연착륙을 위한 추진동력을 얻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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