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우커가 휩쓸고 간 대한민국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 17일 친구들과 자유여행으로 한국에 온 중국인 위시(29)씨는 서울 명동과 가로수길을 찾았다가 크게 실망했다. 추천받은 관광명소에는 중국인들뿐이었고, 몇 걸음만 걸으면 중국어로 접근하는 판매원들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쇼핑보다는 관광이 목적이었지만, 서울은 쇼핑백에 물건을 쓸어담는 '큰 손 요우커(遊客ㆍ중국인 관광객)'만 반기는 듯 했다. 유럽형 게스트하우스를 생각하고 예약한 숙박업소 역시 투숙객은 중국인뿐이었고, 그마저도 교류할 공간 없이 '잠만 자고 가는' 형태였다.
# 지난 주말 서울 명동을 찾은 자영업자 이경섭(35)씨는 아내에게 줄 화장품 선물을 고르기 위해 한 브랜드숍 매장에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발길을 돌렸다. 자신을 안내하는 판매원의 발음을 알아듣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씨와 어렵게 대화를 나누던 판매원은 곧 유창한 중국어로 다른 손님을 맞았다. 매장 밖으로 나오니 거리에는 중국인이 한국인보다 많았고, 길을 건너려 들어선 지하도 벽면에는 중국어 광고가 가득했다. 중국인들의 국내 소비 덕에 경기가 살아나니 다행이다 싶다가도 '요우커의 범람'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요우커를 의식한 국내 유통가와 관광업계가 지나치게 '중국화(中國化)'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인들에게는 '관광한국'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내국인들에게는 불필요한 반감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요우커를 위한 마케팅이 '쇼핑'에만 집중돼 있다는 사실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인 요우커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최우창 기자 smicer@
25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18~24일)기간 동안 한국을 방문한 요우커는 1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집계 이래 최대 규모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는 지난해보다 28% 증가한 794만명의 요우커가 올해 한국을 방문,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급증하는 요우커에 유통ㆍ관광업계는 중국어 서비스와 현지 문화를 반영한 경품,이벤트 등으로 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보다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중국어 가능한 직원을 전면배치하고 매장 인테리어를 중국풍으로 꾸미거나, 이들이 명절에 주고받는 '홍빠오'로 경품을 준비하는 것이 '편리함' 내지 '반가움'을 줄 수는 있지만 한국적인 정서를 경험할 기회를 오히려 빼앗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중국인들이 원하는 것은 한국이 중국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면서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해 필요한 두가지가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과 '만족도를 높이는 것'인데, 우리나라 유통업계는 현재 '쇼핑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우커들이 다양한 경험과 언어로 '재미'를 느끼게 해 한국관광 전반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 내부적으로도 고민이 깊은 분위기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중국인을 위한 대형 쇼핑몰'로 정체성을 굳히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제 요우커가 줄어들 지 불안하다"면서 "국내 백화점, 마트 채널이 고전하고 있듯이 쇼핑몰은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추세여서 직구채널이 확산되면 한국을 찾는 발길도 끊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은 요우커의 관심을 끌 중국화 된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전략수정이 필요한 듯 하다"고 전했다.
면세점 뿐 아니라 내국인 중심이었던 백화점, 마트, 아웃렛, 지역 관광명소에도 요우커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침범' 또는 '침해'로 느끼는 국내 정서를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홍콩에서 비화된 중국 본토인과의 갈등은 역사적 특수성 뿐 아니라 본토인의 급격한 증가를 '영역침범'으로 인식한데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황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시대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외국인들의 국내 관광과 소비는 하나의 중요한 시장기회"라면서 "내수성장이 멈춘 상황에서 이 같은 흐름을 부정적으로 봐선 안된다"고 말했다. 황 연구위원은 "엄청난 규모의 요우커 소비는 향유하면서도, 이들 중심의 마케팅이나 영역 확대는 불편해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훈 교수는 "글로벌 마인드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심리적으로 '우리공간'의 침해라고 인식할 수 있지만, 이제는 외국인과의 공존을 받아들여야 문화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관광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나 업계에서도 요우커들의 변화를 선도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흡연문제나 공공장소 예절 등 내국인과 마찰을 빚는 몇 가지 부분에 대해서 가령 '에티켓 파이브(5)'를 만들어 항공사나 크루즈, 여행사를 통해 배포하는 식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1989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계여행이 자유화 됐을 당시, 한국인들 역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쇼핑하는 형태로 관광문화가 시작됐다"면서 "지금 중국은 관광문화의 진입단계에 있으며, 이들의 성숙된 문화형성을 위해 한국의 정책적ㆍ정서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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