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대신 '환닝관닝'…명동 쇼핑가서 냉대당하는 한국인들

중국인 관광객, 외국인 중 최대 큰 손...1인당 232만원 지출...92%가 화장품 향수 구입...명동 화장품 가게 점원들 '중국인' 환영 한국인 '냉대' 분위기 확산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지난 19일 오후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서울 창천동에 위치한 '외국인전용 관광기념품 판매점'에 들어가기 위해 모여있다.

지난 19일 오후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서울 창천동에 위치한 '외국인전용 관광기념품 판매점'에 들어가기 위해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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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김모(31)씨는 서울 명동 한 화장품 가게에 들렀다가 뜻하지 않은 '냉대'를 당했다. 기초화장품 한 종류가 떨어져 구입할 겸 샘플도 얻어가려고 유명메이커 화장품 가게에 들어갔지만 점원이 김씨 일행이 한국인임을 눈치 채고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더 기분 나빴던 것은 그 점원이 김씨 일행에 이어 들어 온 중국인 관광객들을 보더니 반색을 하며 마중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속이 상한 채 가게를 빠져 나온 김씨는 나중에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화장품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는 김씨에게 "어제 오늘 일도 아닌 데 뭘 새삼스레 그러느냐. 예전에 일본인들이 명동을 점령했을 때는 일본인들이 한국인보다 우대받았다"고 면박을 줬다. 친구에 따르면, 요즘엔 명동의 화장품 가게에선 고가의 물건을 싹쓸이하는 중국인 대상 매출액이 워낙 커서 잘해야 한 두가지 물건만 구입한 후 샘플을 잔뜩 챙겨달라고 요구하는 한국 손님들을 상대할 겨를이 없다고 한다. 중국인의 최대 명절 춘절을 맞아 서울 명동 거리가 중국인 관광객 '요우커'(遊客)들에 의해 점령당한 가운데, 김씨처럼 명동 소재 화장품 등의 쇼핑몰에서 한국인들이 냉대를 당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 19일 오후 명동 거리는 춘절 연휴를 즐기기 위해 한국을 찾은 12만여명의 중국인들로 발 디딜틈이 없었다. 특히 상점 입구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점원들과 판매대 계산대의 점원들은 손님들을 맞이할 때마다 '어서오세요' 대신 '환닝 관닝'(歡迎 光臨) 등 중국어를 유창하게 외치며 물건 팔기에 바빴다.

특히 화장품 가게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그득했다. 명동 상가 한 관계자는 "중국인들이 일제보다 싸지만 질이 비슷한 한국 화장품을 싹쓸이하고 있다"며 "최소한 한 번에 20만~30만원 정도는 사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처럼 중국인들이 명동 쇼핑 거리를 점령한 것은 관련 통계로도 입증되고 있다. 서울연구원에 의하면 2013년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인당 평균 156만원을 지출했는데에 비해 중국인 관광객은 1인당 232만원이나 써서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큰 손'인 것으로 확인됐다.

유럽ㆍ미국인들은 평균 149만원, 동남아 115만원, 기타117만원 순이었고, 일본인의 경우 60만원에 그쳐 중국인에 비해 4분의1 수준에 불과했다. 항목 별로는 쇼핑 127만원, 숙박비 54만원, 식사비 28만원, 문화예술비 11만원 등이었다. 가장 많이 구입한 쇼핑 품목으로 향수ㆍ화장품(62.0%)이었다. 이어 의류(54.3%), 식료품(52.7%) 등이 차지했다.

특히 중국관광객들은 화장품ㆍ향수를 수입한 비율이 무려 92%에 달했다. 반면 일본ㆍ구미주 관광객은 식료품(각각 58ㆍ44%),동남아 관광객은 의류(68%)를 많이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명동의 관광 쇼핑가는 이미 중국인들을 맞기 위해 변신한 상태다. 쇼핑몰 입장에서 보면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들이 매출액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까다롭고 서비스 물품(셈플)까지 잔뜩 요구하는 한국인들을 상대할 시간에 한 명이라도 더 중국인등 외국인 손님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게 낫기 때문이다.

A화장품 명동점 관계자는 "직원을 뽑을 때 중국어 능력을 우선적으로 보는 한편 매장의 상품 구성도 중국인들에게 인기 좋은 것들로 채우고 있다"며 "중국인들을 유치하기 위해 여행사ㆍ가이드들과의 연계도 강화하는 등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솔직히 한국인들은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이 많아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명동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반가움과 섭섭함을 동시에 호소하고 있다. 이날 명동 거리에서 만난 조모(39)씨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인들이 쇼핑을 많이 하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안다"며 "하지만 명동에 올대마다 쇼핑몰 점원들이 한국말을 하는 쪽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고 중국인들이 들어 오면 친절하게 웃으면서 서비스하는 모습을 보면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리고 점령당한 것 같은 기분에 씁쓸하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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