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 연초부터 삐걱거린다

기름값·탄소배출권 등 현안에 이견 뚜렷
석유제품 값 인하 압박에 정유·화학사 "내릴 만큼 내렸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놓고도 "실효성 없다…할당량 늘려야"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정부와 기업이 연초부터 국제유가 급락과 탄소배출권 등 각종 현안들을 놓고 극명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급락하자 정유사와 화학사들에게 석유관련제품의 가격을 내리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더 이상 내릴 여지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 최근 강행된 탄소배출권 거래제에 대해서도 업계는 할당량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오히려 해마다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일방통행식 제도 시행이 오히려 기업의 경영 환경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여러 산업발전 방안보다 유류세 인하와 배출권 할당량 확대 등 당면 현안 해결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온도차는 최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방한홍 석유화학협회장(한화케미칼 고문) 등을 만난 자리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윤 장관은 "국제유가 하락이 3개월 이상 지속된 만큼 플라스틱 제품에 원재료가 인하분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석유화학 업체들을 압박했다. 하지만 석유화학업계 CEO들은 "가격은 이미 내려갈 만큼 내려갔다"고 입을 모았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이미 제품가격은 국제유가 하락 등을 반영해 많이 내려간 상태"라며 "업체들이 덕보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은 우리한테 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라고 선을 그으며 "석유화학제품 가격은 국제유가 변동보다는 시장 수급상황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같은 날 채희봉 산업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이 대한석유협회와 주유소협회 등 석유ㆍ액화석유가스(LPG) 유통업계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양측의 온도차는 컸다.

채 정책관이 "기름, 가스값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반응은 냉랭했다. 기름값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데다 정유사들이 국제 유가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기름값을 내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유가 등락에 상관없이 석유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고정세율을 적용한다. 현재 휘발유에는 ℓ당 교통세 529원이 붙고, 교육세(교통세의 15%), 주행세(교통세의 26%)가 부과된다. 여기에 부가세(세후 가격의 10%)가 합해진다. 한마디로 휘발유 값의 60% 정도가 세금이라는 얘기다.

또 정유업계가 국제 유가 하락에 따라 대규모 재고평가손실을 떠안는 등 수익성이 악화돼 기름 값을 인하할 여력이 없는 측면도 있다. 지난해 국제유가가 반 토막 나면서 국내 정유 4사가 본업인 정유사업 부문에서 사상 처음으로 2조원 이상 영업손실을 냈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최근 정부가 시행한 탄소배출권 거래제에 대해서도 업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시행 전부터 정책 실효성에 대해 업계와의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었음에도 밀어붙이기식으로 강행해 오히려 기업들의 투자를 막는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제도 시행 이틀째인 13일 한국거래소를 통해 거래된 탄소배출권은 47만5000원 어치에 불과해 '예고된 실패'였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일 거래량은 1190톤, 974만원이었다. 팔고 사는 곳이 있어야 거래가 성사되는데, 탄소배출권을 할당받은 기업들의 대부분은 애초부터 거래의사가 없음을 밝힌 바 있다.

철강업계 CEO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제도 시행 첫날인 12일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중국에서는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는데 중국산 철강재가 국내 수입되면 당연히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중국에서 수입되는 철강재에 대한 국경세 부과와 (배출권으로 거둬들인 세금을) 정부가 R&D자금으로 업계에 지원하는 방안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도 "현재 생산량을 감안할 때 동국제강의 배출량은 올해 할당 수준인 200만톤으로는 부족하다"며 "협회를 중심으로 정부에 할당량 확대를 건의했다"고 말했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금호석유화학 등 국내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도 최근 환경부에 탄소배출권 배당량을 늘려달라는 이의신청을 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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