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습격] 습합(習合)이란 말(238)

지식인들은 저들만 쓸 수 있는 말을 개발하여 유통하기를 좋아한다. 무식을 비웃는데는 어휘로 뻐기는 것이 가장 잘 먹히기 때문일까. 예전에는 질곡이나 유목, 현상학이나 탈근대나 상부구조 따위의 말들이 그런 편이었는데, 이젠 통섭이나 습합 따위의 말들이 끼어들었다.

익힐 습(習), 합할 합(合). 습합이란 말은 한자로 들여다 봐도 아리송한 말이다. 대체로 습합은 서로 다른 종교가 각기 장점을 받아들여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신크리티즘(syncretism)이라고 하는데, 좀 더 풀자면 상이하거나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믿음들이나 사상들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것이다. 절 뒤에 있는 칠성각과 산신각은 북두칠성과 산신(호랑이)이라는 신을 믿는 옛 기복(祈福)신앙을 불교가 습합한 것이다. 부처는 중생들이 자신을 신으로 모시는 것도 바라지 않았고 그의 가르침이 중생들의 현세 복락을 빌거나 도모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지만, 사찰은 포교를 이유로, 중생들의 오래된 신앙을 탄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습합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신불(神佛)의 습합 문제가 꽤 시끄러운 이슈였고, 메이지 유신 때는 저런 포용이 전격적으로 금지되기도 했다. 불교에는 훈습(熏習)이란 말이 있다. 아마도 습합은 여기에서 파생된 말일지도 모른다. 훈습은 어떤 것에 계속하여 동일한 자극을 은근히 줄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그 영향을 받게 되는 작용을 의미한다. 옷에는 향기가 없다. 그러나 옷과 향료를 함께 두면 그 옷에 향기가 밴다. 옷에 남아있는 향기를 습기(習氣) 혹은 종자(種子)라고 부른다. 부파불교에서는 색심호훈설(色心互熏說)을 내놓았다. 외물과 마음은 서로 옷과 향기처럼 함께 있으면 영향을 받아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좋은 외물을 만나는 것, 좋은 마음을 먹는 것의 중요함을 여기에서 찾았다.

홍신선시인의 연작 '마음경'은 마음이라고 하는 인간 실체 속의 어떤 현상을, 불교적인 수행의 시놉시스인 경전과 '습합'하려는 의욕을 보인다. 마음은 무엇인가. 그 해석은 여러 갈래이겠지만, 홍신선시인은 우주와의 교감 혹은 일체성에서 찾는 듯 하다. 마음을 찾으려 스스로의 내면 속으로 파고 들어가 내시경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속에, 일상 속에 흩어져 있는 사물들과 생명들, 그리고 기운들이 지닌 보편의 생생한 양상이, 바로 마음을 증언하는 수많은 참고인들이다. 그런데 60편 시의 여로를 지나며 이 시인은 더욱 어려운 질문 앞에 서고 만다. '죽음 뒤에도 여전히 펼쳐질 저 자연은, 마음 밖인가.' 그렇다면 내가 죽어서 육신과 함께 꺼뜨릴 지금 이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그러나 그는 허무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마음과 유비(類比)되는 수많은 대상들(특히 자연들)을 탐미적이라 할 만큼 정밀한 표현으로 붙잡아 올린다. 마음을 수배하는 가운데 포착된 그들의 은밀하고 또렷한 낌새들이야 말로, 시적 공간에서 부활해 날아갈 듯한 생생함으로 얻는다. 시인이 '마음경'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면벽한 선사(禪師)를 꿈꾸었기 때문이 아니라, 언어로 치환된 그 몸들 속에 시인 자신을 들여놓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마음에 얽힌 몸에서, 시줄 속에 남은 몸으로 이동하는 것. 이른 바 시몸(詩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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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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