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법정기일 처리했지만…예결위 비정상 운영·상임위 무력화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여야는 12년만에 예산안을 법정기일 내에 처리했다. 국회 선진화법 적용 후 처음으로 진행된 올해 예산안은 결국 법이 목표했던 대로 법정기일 내 예산안 처리하는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지만 적지 않은 문제점도 드러냈다. 심사권한이 없는 예결위가 예산안의 최종안을 확정했으며, 우리 국회가 지켜온 상임위 중심주의는 예산안 법정기일 준수라는 명분앞에 무력화됐다.

여야는 2일 본회의를 통해 375조4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확정했다. 당초 정부의 예산안에 비해 3조6000억원을 삭감하고 추가로 3조원을 증액했으며, 세입감소 4000억원과 재정적자 축소 2000억원을 반영한 규모다. 하지만 이같은 예산안을 합의한 의원들은 여야 심사권이 만료된 예결위원들이다. 예결위의 예산심사권은 예산안이 자동 상정되는 지난달 30일에 종료했지만, 예산안 심사가 끝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부 원안에 대한 예산안 수정안을 마련하기 위해 여야 예결위 위원들이 이달 1일과 2일에 걸쳐 예산안 수정안 마련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달 30일까지 여야가 예산안을 편성했다면 이날 본회의 원안으로 예산안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원안에 대해서는 심사권을 갖추지 못한 의원들이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사실 예결위가 정해진 심사기간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은 꾸준히 제기됐다. 예산안 심사 기간 자체가 길지 않은데다,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가가 줄을 잇는 상황에서 예산안이 조기에 나올 경우 집단적 반대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예산안이 늦게 발의되다보니 본회의에서 의원들의 예산안을 표결처리하지만 예산안에 담겨진 구체적인 사업 내용들을 잘 모른 채 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 역시 안게 됐다.

예산안 처리 국면에서 법안을 심의 의결하는 상임위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상임위 논의보다 여야 지도부간 합의가 선행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특히 예산안부수법안이 문제였다. 예산안에 따른 내년도 세입을 결정하는 예산부수법안의 경우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예산안 자동부의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예산안과 함께 자동으로 본회의로 직행한다. 예산안부수법안은 국회 예산정책처의 의견을 들어 국회 의장이 지정해 자동부의토록 했다. 여야가 예산부수법안에 대한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의장이 지정한 예산안부수법안이 본회의에 자동부의되는 구조다. 하지만 이 경우 한 하나의 개정안만이 본회의에 부의되기 때문에 세법에 담겨져야 할 다양한 내용들이 담길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올해 예산안 부수법안의 경우에는 소관상임위에서 개정안 내용을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여야간의 합의를 통해 예산부수법안을 얼마든지 손볼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됨에 따라 예산안부수법안에 대한 상임위와 법사위의 심사권이 제한을 받는다는 문제점이 발생하게 됐다. 조세소위 등에서는 수백여개의 세법개정안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지만, 예산안 처리 당일 여야 원내지도부의 정치적 타협과 결단에 의해서만 이뤄지고 만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