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습격] 꾀꼬리단풍과 피단풍(174)

원래 단풍은 단풍나무의 잎이 붉고 노랗게 물드는 것에만 썼을 것이다. 그것이 비유로 쓰이다가 이젠 가을숲과 나무 전체에 쓰이는 말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단풍의 진면목은 붉은 빛깔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노랑이 곁들여지지 않는다면 단풍은 오히려 눈을 혹사시키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붉은 단풍은 피단풍이라고도 부르는데, 오래전 궁예가 원한의 피눈물을 흘리며 도망쳤다는 철원 일대의 피단풍을 보면서 처연함과 더불어 오래 보고있을 수 없는 근원적인 현기증을 느꼈다. 그 아름다움은 섬뜩함이었다. 노란 단풍은 은행잎이 대표 주자이겠지만 참나무 계열의 갈잎들도 그에 못지 않게 아름답다. 이 노란 단풍은 꾀꼬리단풍이라도 하는데, 꾀꼬리의 노란 빛을 빌려온 말이겠지만, 고운 노랑을 한참 들여다 보노라면 꾀꼬리소리같이 맑은 울음이 숲 전체에서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원효봉 오르는 길에 있던 작은 절 앞에 있던 큰 나무가 바람이 불자 울음처럼 후두둑 제 잎을 내던졌다. 걸어오던 여인은 움츠리며 옷깃을 다시 여몄다. 세상 참, 슬프고 쓸쓸하게도 곱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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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