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습격]산(山), 등산과 등선(登仙) 사이(173)

산(山)은 한자 글자에 표현된 것처럼 원래 세 봉우리 쯤 되어야 제맛이다. 그 중앙에 가장 봉긋한 산이 있고 양쪽에 형제처럼 모성의 중심에 기댄 곁산이 있어야 제격이다.

서양의 '등산'이란 개념은 산을 정복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이 숨어있다. 하지만 한반도와 중국의 옛사람들은 산을 수행처로 삼았다. 산에 오르는 것은 도(道)를 닦는 것이며 산을 보는 것은 마음을 세우는 일이었다. 산에는 하늘과 가까워지는 비밀이 있으며, 신인(神人)이나 초인으로 볼 수 있는 선(仙)이 살았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날개가 생겨나 하늘로 가뿐히 오르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을 꿈꾸었다. '仙'은 산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 뿐이다. 그들은 인간이 사는 마을을 속(俗)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골짜기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산과 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에 인간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산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간 위주로 산을 본 것이 아니라, 산의 관점으로 인간을 읽은 이 '발상의 전환'이야 말로, 동양적 사유의 중요한 비밀일지도 모른다.

산에 올라가 보면 깨알처럼 흩어져 오글거리는 도시가 보이고 점점이 묻어있는 집들이 보이고, 인간은 그저 형상도 없어 그 속에 숨어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삶의 실체, 욕망의 실체, 분노와 슬픔과 기쁨의 실체를, 산에 가면 비교적 일목요연하게 내려다볼 수 있지 않던가.

가을산은 맑은 계곡물을 내고 맑은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낸다. 산을 둘러싼 이내(嵐)가 가장 아름답고 그윽한 때도 이 때이다. 불붙는 빛깔을 닮은 산의 '자해(自害)' 시늉은, 아마도 태양빛에 대한 경건한 경배를 담은 내추럴 마스게임이 아닐까. 태양이여, 그동안 그토록 귀한 빛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그 빛깔을 그려 바치는 아름다운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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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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