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붕괴 20년 … "안전부터 설계해라"

'서울시 토목상' 대상 김상효 교수가 던지는 경종
작은 부분 하나 때문에 전체가 무너져
사고 나더라도 인명피해 최소화할
안전 대피시스템 갖추는게 설계의 기본


김상효 연세대학교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김상효 연세대학교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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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1992년 당시 서울에 건설된 지 25년 넘은 한남대교, 한강대교, 청계고가도로, 아현고가도로 같은 교량, 고가를 일제히 안전진단했어요. 예산이 충분하지 않으니까 그보다 오래되지 않은 다리는 교각 아랫부분을 수중조사만 했고요. 그런데 점검작업이 다 끝나고 6개월도 안 돼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난 거예요. 성수대교는 교각 하부만 조사를 했지 상판 쪽은 점검을 안 했는데, 거기에 문제가 있었던 거죠.”김상효 연세대학교 교수(사진·58·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는 다음 달이면 꼭 20년이 되는 성수대교 사고를 이렇게 회고했다. 서울 성수동과 압구정을 잇는 성수대교에서 출근하거나 등교하고 있던 시민 49명이 한강으로 추락하고 그 가운데 32명이 목숨을 잃었던 이날 사고는 부실공사와 부실감리, 미흡한 안전검사가 빚어낸 참사이자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던 부정부패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김 교수는 “다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기울고, 이런 사고는 어느 한 부분만 문제가 돼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설계 단계에서 안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면 시공 단계에서 그 부분을 찾아내 수정했어야 하고, 전문가라면 감리나 감독업무에서도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사소한 부주의들이 쌓여 결국 큰 일이 터지고 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만에 하나 이런 구조물들이 무너지더라도 사람은 다치지 않도록 (서서히 기울어) 최대한 대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설계의 기본 개념”이라며 “과거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처럼 작은 부분 하나 때문에 전체가 갑자기 순식간에 무너진다는 건 설계와 건설 과정의 모든 시스템이 부족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11일 ‘서울시 토목상’ 대상을 수상한 김 교수의 얘기는 우리 사회에 울리는 경종이다. 김 교수는 1990년대부터 서울시 건설기술심의위원회 위원, 시설안전자문단 자문위원, 외부전문가 기동점검단 점검위원 등으로 현장에서 활동해 왔고, 각종 교량 사고 때마다 조사위원으로도 참가해 왔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 기반시설 건설과 토목기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평가받았다.

김 교수는 2012년 10월 경기도 파주의 임진강 장남교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상판이 무너지면서 인부들이 다치고 사망한 사고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을 이었다. “장남교 붕괴 사고 역시 확인해 보니 설계가 틀렸다고도 할 수 없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상태였지만 시공사가 혼동할 수 있을 만한 부분도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대로 완공됐다면 분명 사용 도중 계속 하자가 생겨 폐쇄되는 지경까지 이를 수 있기에 공사 단계에서 문제가 드러난 게 차라리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고 털어놨다.

김 교수는 이미 발생한 사고의 원인 조사뿐 아니라 시설물의 관리, 성능 개선을 위한 기술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여 왔다. 23년 동안 연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한토목학회, 한국강구조학회, 한국구조물진단유지관리공학회 등에 많은 논문과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그중 하나가 직접 개발한 ‘온도프리스트레싱 특허공법’이다.

이 기술은 교량 공사 시 필요한 거더(교량의 상판을 떠 받치는 보)를 만들 때 열을 가해 늘어난 강판을 붙이는 방식이다. 강판을 늘려놓은 상태에서 중간중간 볼트를 채우면 열이 식으면서 강판이 팽팽해질 때 힘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켜 큰 하중도 잘 견디도록 해 준다. 이미 서울 응봉교 공사, 정릉천 자연형하천 정비공사 내 가교설치 공사 등 최근 5년간 서울시 내 5건의 공사에 이용됐다.

김 교수는 최근 예산이 부족하거나 주민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각종 도로, 철도, 공항은 물론 댐이나 발전소 등 국가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지 못한 것에 우려감을 나타냈다.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의 교통망이 유기적으로 확장·연결되지 못하고 오직 서울 도심을 향하고 있는 것 또한 지역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사회 기반시설물은 국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싶으면서도 자기 주변에 가까이 설치되는 것을 꺼려하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수십년을 내다보고 미리 갖춰야 하는 것들”이라며 “수요가 발생한 다음 건설하려면 이미 늦고 경제적 부담도 매우 커진다”며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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