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재즈·플라멩코…올 가을 적셔줄 '3色 3音' 뮤지컬

록뮤지컬 '더 데빌', 재즈 음악극 '노베첸토', 스페인풍의 '조로' 등 잇따라 개막

뮤지컬 '더데빌' 포스터

뮤지컬 '더데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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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강렬한 록 사운드냐, 감미로운 재즈 피아노 연주냐. 그것도 아니면 이국적인 집시음악이냐.' 최근 막을 올린 세 편의 뮤지컬은 각기 다른 음악 스타일을 추구한다. 음악을 통해 줄거리와 인물의 성격까지 표현해내는 뮤지컬의 특성상, 어떠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느냐에 따라 작품의 정체성과 분위기도 좌우된다. 창작뮤지컬 '더 데빌'은 웅장하고 강렬한 록 넘버(노래)들을 내세워 작품의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를 살렸다. '노베첸토'는 아예 국내 대표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이 무대에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한다. '조로'는 작품에 등장하는 탭댄스와 플라멩고가 작품의 분위기를 보다 밟고 활기차게 만들어준다.

더 데빌 '더 데빌'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뉴욕 월스트리트로 배경을 옮겨 놓은 창작극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이곳에서 주식 브로커인 존 파우스트 앞에 정체불명의 '엑스(X)'가 나타난다. 원작에서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꾐에 빠져 현세의 쾌락을 좇게 됐다면, '더 데빌'에서는 이 쾌락이 '더 많은 자본'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다 구체화된다. 엑스와의 거래 이후 파우스트는 월가에서 승승장구하며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지만 그의 영혼은 서서히 '엑스'에게 잠식당해간다. 이를 지켜보던 연인 '그레첸'은 파우스트를 지키려고 나서지만 오히려 이 거래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단 세 배우가 등장하는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음악'이다. 거의 모든 진행이 노래로 이루어지는 '송스루(Song-Through) 뮤지컬'로, 프로그레시브, 사이키델릭, 하드록 등 다양한 록 형식의 넘버 22곡으로 채워져 있다. 어두운 조명과 찢어질 듯한 기타 소리는 작품의 음습한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 "14만4000명 이마엔 아버지의 이름있었으니 열매가 익었도다", "너는 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등 성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한 노래 가사는 섬뜩한 느낌마저 줄 정도다. '헤드윅',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 대표적인 록 뮤지컬을 선보였던 이지나 연출의 손길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공연이 끝나고 난 후의 커튼콜은 흡사 록 콘서트를 연상시키다. 11월2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음악극 '노베첸토' 중에서

음악극 '노베첸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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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첸토 '노베첸토'의 무대 한가운데에는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다. 무대 왼편에 앉은 한 스태프는 자리에 앉아 여러 도구를 사용해 파도나 바람소리를 즉석에서 만들어내고, 오른편에는 드럼과 베이스 연주자들이 재즈 피아노의 선율을 든든하게 받쳐준다. 일생을 배 위에서 살다간 천재 음악가 '노베첸토'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2002년에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란 제목의 영화로 국내에서 개봉되기도 했다. 특히 폭풍으로 흔들리는 배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던 피아노에 앉아 노베첸토가 신나게 연주를 하던 모습은 지금까지도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이 피아노 연주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게 작품의 최대 장점이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재즈 레이블 '블루노트'에 진출한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이 '노베첸토'를 맡았다.

'노베첸토'의 뜻은 이탈리아어로 '1900'이란 뜻이다. 1900년, 희망의 땅 아메리카로 향하는 이민선 버지니아호의 1등석 객실 피아노 위에서 한 버려진 아이가 발견되는데, 그가 바로 노베첸토다.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땅에 발을 내디딘적 없는 노베첸토는 8살 때 이미 피아노 신동으로 소문이 난다. 작품에선 '노베첸토'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트럼펫 연주자 '맥스'가 화자로 나서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맥스' 역을 맡아온 배우 조판수는 일인 다역을 능청스럽게 소화하고, 곽윤찬은 수줍게, 한 마디 대사 없이 '노베첸토'를 연기한다. 9월14일까지 정동 세실극장.

뮤지컬 '조로' 중에서

뮤지컬 '조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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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

뮤지컬 '조로'는 플라멩코로 시작해 플라멩코로 끝난다. 화려하게 치장한 집시들의 무대는 축제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전통 플라멩코 리듬에 현대적인 팝 선율을 가미한 음악으로 인기를 얻은 '집시 킹스(Gipsy Kings)'의 음악이 적재적소에서 관객들의 흥을 돋운다. '집시 킹스'는 스페인 내전을 피해 프랑스 남부에 정착한 레예스 가문의 형제 8명으로 구성됐는데, 국내에서는 한 광고의 배경음악이 된 '볼라레(Volare)'란 곡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라틴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이성준 음악감독이 이번 공연부터 라틴음악 4곡을 추가로 삽입해 더욱 이국적인 느낌을 살렸다.

2011년 초연 이후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조로'는 평범했던 한 남자가 영웅이 되는 과정을 담는다. 원조 영웅 '조로'가 사라진 지 20년, 그 사이 자본가들의 수탈은 더욱 가혹해지고, 그만큼 민중의 삶은 피폐해졌다. 집시킹 '이네즈'는 광산 강제 노역 중 탈출하다 총을 맞은 '디에고'를 구하고는 그를 제2의 '조로'로 만들고자 한다. '조로'는 전형적인 '민중 영웅'이지만, 여느 히어로들처럼 무게를 잡진 않는다. 익살맞고, 넉살좋은 그의 개그는 작품의 분위기를 한층 더 가볍고 유쾌하게 만든다. 스페인향이 잔뜩 풍기는 의상과 무대, 배우들의 화려한 플라멩코 군무, 입체감을 높인 기차 영상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10월26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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