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습격]귀는 왜 밝고 어두운가(147)

청각에 명암이 없지만, 귀가 어둡다 한다. 생각에도 밝고 밝지 않음이 있을리 없지만 그 친구 세상에 참 어둡다 한다. 색깔이 불을 켜고 끔이 없지만, 그 치마 빛깔 너무 어둡지 않아?라고 한다. 어두움이란 대개 답답하고 미련하고 색을 둔탁하게 하는 것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두움이란 자기 안으로 눈을 밝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귀가 어두우면 낙천적인 삶이 된다는 것, 세상 물정에 한참 어두우면 최소한 남에게 해를 끼칠 영악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 어두운 것에는 세상이 시작하던 시절의 원천적 불안과 슬픔이 도사리고 있다는것.

왜 절망은 눈앞을 캄캄하게 하는가. 왜 분노는 인간을 눈멀게 하는가. 왜 슬픔은 눈물을 만드는가. 왜 고통은 인간에게 눈부터 감게 하는가. 왜 큰 고함을 지를 땐 눈을 지긋이 감는가. 어둠은 집중이며 신비이며 미지이며 시작이며 순수이며 태초의 말씀이라는 것. 모쪼록 어두울 때 인간의 본연의 겸허와 순수를 회복한다는 것. 빛이 만들어온 잠정적이고 찰나적인 세상에, 그 세상보다 훨씬 오래 산 어둠이 말해주는 속삭임을 들을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밝음은 어둠보다 훨씬 경박하고 단조롭고 투박하다. 어둠을 마음의 바닥에 가진 자, 때때로 그 어둠의 물빛에 스스로를 비춰보며, 빛이 없던 날들의 그 완전한 평화와 정적을 기억해내는 자야 말로, 이 세상에 잠입한 천사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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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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