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헌법정신 사라진 제헌절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66주년 제헌절을 맞이한 국회 분위기는 오묘했다.

17일 제헌절 기념행사가 열린 국회 로텐더홀에서는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한 여야 지도부가 참석해 헌법정신을 다짐했다. 같은 시간, 행사장 바깥에는 며칠 째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두 장면과 함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이 떠오르자 갑자기 쓴웃음이 났다.최근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서 제헌절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국민의 뜻을 섬기겠다는 여야 지도부의 발언을 무색케 하는 정쟁만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 임시국회만 봐도 국민은 안중에 없었다. '6월 국회는 세월호 국회'라며 세월호 참사 문제를 끝까지 파헤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야는 기관보고 일정조차 이견을 보이면서 파행으로 몰고 갔다. 기관보고를 진행하면서도 걸핏하면 중지하는 등 파행을 지겹게 반복했다.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던 세월호 특별법 역시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17일까지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달 남짓인 임시국회 기간은 허송세월하고 막판 벼락치기식 타협을 모색하는 행태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논의할 시간이 부족해 여야가 7월 임시국회를 개최할 것이라는 소식도 한심해 보였다.민생법안은 어떤가. 부동산관련법, 각종 경기활성화법안은 세월호 관련 법안에 밀려 단 한 건도 통과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결과적으로 세월호특별법과 민생법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쳤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정치권의 말은 제헌절에 허언이 되고 말았다.

정의화 의장은 제헌절 기념사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정치와 국회의 나아갈 길을 깊이 생각하길 바란다"고 했다. 정쟁이 이미 체화된 정치권은 과연 바뀔 것인가. 정 의장 말대로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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