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獨, 수시검증 시스템 발달
의원내각제 오랜 정당정치 경험으로 이미 확인된 인물 고용
#유럽선 어떻게 하나
유럽 국가들은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 등을 의회가 검증하는 인사청문회제도를 시행하지 않는다. 영국과 독일 등 의원내각제에서는 대부분 이미 오랫동안 정당정치 활동을 하면서 검증된 인물들이 행정부 고위직에 기용되기 때문이다.
어느 정치인이 선출직 의원을 역임했다면 그는 몇 차례 선거를 치르면서 경쟁 후보와 언론, 유권자로부터 강도 높은 검증 과정을 통과한 것이다.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서복경 박사는 "정당의 주요 당직을 맡았던 정치인들도 입각하는데, 그들도 지구당에서부터 단계적으로 밟아 올라오면서 철저하게 걸러진 인물들"이라고 말했다.
서 박사는 "유럽 정당은 당원 권한이 강하고 지구당은 대면 접촉이 활발한 커뮤니티"라고 설명했다. 유럽은 인사청문회제도 대신 그 이전 단계에서 '수시 검증 시스템'을 가동한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은 총리가 지명하는 장관들이 대부분 정당정치에서 단련된 인물들이다. 내각 2인자인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은 2001년 하원의원에 선출됐고 마이클 하워드 전 보수당 당수에 의해 2005년 예비내각 재무장관에 임명됐다.
빈스 케이블 산업부장관은 노동당에서 출발해 사민당을 거쳐 자민당에서 부의장과 재무 당당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또 에드워드 데이비 에너지ㆍ기후변화 장관은 자유당 의원 출신이고 필립 해몬드 국방장관은 보수당 의원으로 1997년 처음 입각했다.
독일도 의원내각제이지만 영국에 비해 입각하는 장관 중 현직 의원 비율이 높지 않다. 하지만 선출직 자리를 거쳤거나 공개적인 검증 절차를 통과한 사람들을 장관으로 임명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9월 총선 이후 12월에 내각을 구성했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사민당 대표가 부총리 겸 경제에너지부 장관을 맡았다. 안드레아 날레스 사민당 사무총장은 노동ㆍ사회부 장관이,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사민당 원내대표는 외무장관이 됐다.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유임됐다. 1965년 기민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인생을 시작한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1984년 헬무트 콜 총리에 의해 총리실 장관으로 발탁됐고 1989년에 내무장관으로 임명됐다.
프랑스는 미국식 대통령제가 아니라 의원내각제를 일부 채택한 이원집정부제 대통령제를 운용한다. 프랑스 정부 형태는 준대통령제, 분권적 대통령제 등으로도 불린다.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되고 총리는 다수당 당수가 맡는다. 총리가 내각을 구성하며 전·현직 의원이나 각 정당의 주요 당직에서 활동한 인물을 주로 장관으로 앉힌다.
이 밖에 이탈리아에서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 수반일 뿐이고 총리가 모든 국정을 책임진다. 별도의 인사청문제도가 없고, 검증은 주로 언론매체를 통해 이뤄진다. 스위스에서 각료는 대개 임기 만료 6개월 전에 물러나고 후임은 의회 투표로 선출된다. 의회 투표 절차가 인사검증을 대신하는 셈이다.
벨기에ㆍ네덜란드는 현역 국회의원이 내각에 들어간다.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다각도로 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인사에 대한 별도의 검증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다.
서 박사는 “정당이 정치인 충원의 기반이 되는 환경에서는 정당 활동 자체가 고위공직자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자 임명 시점에서 일회성으로 이뤄지는 데 비해 정당 검증은 오랜 시일에 걸쳐 여러 가지 활동에 대해 다각도로 이뤄지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14년전 제정돼 계속 범위 확대
2000년 DJ때 야당 한나라서 주도해 法 제정
#한국의 청문회史는…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다운계약서 작성, 탈세, 병역 문제, 논문표절 등 각종 의혹의 장으로 익숙한 인사청문회가 대한민국에 도입된 지는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인사청문회법'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6월 16대 국회에서 제정됐으며, 도입된 지 올해로 14년이 됐다. 그전까지는 대통령이 임명동의를 요청하면 국회 본회의 표결을 통해 가부를 결정했다. 공직자의 도덕성과 직무수행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없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2000년까지 아예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3년 공직자 인선과정에서 주요 공직후보자들이 각종 의혹으로 낙마하자 미국과 같은 인사청문회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시 14대 국회에서 국회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 인사청문회제도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15대 국회에서도 인사청문회 도입이 시도됐지만 여야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전격 도입된 것은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16대 총선에서 인사청문회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당시 여소야대 국면에서 한나라당 주도로 인사청문회 제도가 만들어졌다. 국무총리ㆍ감사원장ㆍ대법원장 및 대법관ㆍ헌법재판소장이 대상이었다. 같은 해 6월 이한동 국무총리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청문회장에 섰다. 2002년에는 한나라당이 인사청문회를 통해 장상, 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잇달아 부결시키기도 했다.
인사청문회의 대상은 계속 확대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확정 이후 2003년 2월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을 인사청문 대상에 포함시키는 개정안이 통과됐고, 2005년 7월 개정된 청문회법은 그 대상을 모든 국무위원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까지로 넓혔다.
이 역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국회의 견제기능 강화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2005년 4월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그토록 시스템을 강조해 온 이 정부(노무현 정부)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인사시스템조차 작동되지 못했다"며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을 확대하고 청문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달 2일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KBS 사장도 인사청문회 대상이 됐다. 이 방송법 개정안은 8월 말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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