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난사 임병장 체포 임박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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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동부전선 최전방인 강원도 고성군 22사단 일반전초(GOP)에서 토요일이었던 지난 21일 저녁 총기난사로 5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은 2005년 6월 경기 연천군 육군 모부대 최전방초소(GP)의 총기난사사건(8명 사망, 2명 부상)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를 냈다.

이번 사건의 정확한 범행 동기와 경위는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총기난사 후 무장 탈영한 임모(22) 병장이 체포돼면 정확한 범행 동기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임 병장은 21일 오후 2시부터 오후 7시55분까지 GOP 주간 경계근무에 투입됐다. 그는 근무에 투입되면서 K-2 소총 1정과 수류탄 1발, 실탄 75발을 지급받았다. 임 병장은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오후 8시15분께 GOP 소초 후방 보급로 삼거리에서 함께 주간 경계근무를 한 동료 장병을 만나자마자 수류탄 1발을 투척하고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도망가는 장병에게 지속적으로 총격을 가했고 GOP 소초(생활관)로 들어가 복도에서 보이는 장병에게도 사격한 뒤 도주했다고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이 과정에서 김모 하사(23), 진모 상병(21) 등 5명이 숨졌다. 생활관 밖에서 3명, 내부에서 2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신은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됐다. 문모 하사(22)는 다리 관통상을, 김모 병장(22)은 우측 팔 관통상을 당하는 등 중상을 입고 각각 국군수도병원과 강릉아산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여발의 실탄을 발사해 12명의 사상자를 냈고 이 중 5명이 사망한 정황으로 미뤄볼 때 임 병장이 미리 범행을 계획하고 조준사격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소초장병 30여명 중에서 근무자 15명을 제외하면 생활관 대기자 15여명이었다. 하지만 내무반에 있던 2명만 총격을 가했다는 점은 의도된 범행이라는 신빙성을 더해준다.임 병장은 사건을 저지르고 나서 K-2 소총 1정과 남은 실탄 60여발을 갖고 부대를 탈영했다. 현지 부대는 사건 발생 5분 만인 21일 오후 8시20분 22사단 사령부에 관련 내용을 보고했고 8시28분 사단내 위기조치반이 소집됐다.

22사단은 GP 지역 전 병력 투입을 지시했고, 8시36분에는 임 병장이 남쪽 민간인 지역으로 내려갈 수 없도록 차단선을 설정했다. 당일 밤 10시12분에 22사단 전 지역에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다. 그러나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하고 2시간이 지나서야 국지도발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 늑장대응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후 군은 9개 대대급 병력을 임 병장 검거를 위해 수색작전에 투입하고 임 병장이 월북할 가능성에도 대비해 비무장지대 내 GP와 연계한 차단 작전 등 최전방 경계작전 태세도 최고 수준으로 격상했다.

임 병장이 발견된 시간은 사건발생후 18시간 만이다. 22일 날이 밝자 헬기와 특수부대까지 동원된 수색작전이 펼쳐진 끝에 오후 2시17분께 고성군 제진검문소 북쪽 300m 지점 숲 속에 은신한 임 병장이 수색팀에 의해 식별됐다. 오후 2시23분께 임 병장의 선제 사격으로 총격전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소대장 김모 중위가 팔 관통상을 입기도 했다.

군 당국은 확성기로 투항을 권유했지만 임 병장은 응하지 않았다. 밤 11시에는 임 병장이 포위망에 접근하는 임 병장이 암구어 시도에 응하지 않자 수색병력이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임 병장은 23일 오전 8시40분부터 아버지와 전화로 울면서 통화하는 등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10시30분 현재 임 병장은 군 수색대와 대치중이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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