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 규제, 묘수는 없나

[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혜화동로터리에서 성북동 방향 800m 남짓한 2차선 도로가에는 기업형슈퍼마켓(SSM) 두 곳과 편의점 세 곳, 대기업 제과점 두 곳이 자리잡고 있다.

편의점 두 곳을 빼면 모두 문을 연 지 5년이 채 되지 않는다. SSM과 편의점, 제과점 등이 생겨 영업하는 동안 동네 슈퍼 네 곳, 제과점 한 곳이 폐업했다. 그 중 비교적 규모가 컸던 중형 슈퍼마켓 한 곳은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출점 제한 탓에 더 이상 대기업 매장이 들어오지 못하면서 중형 슈퍼마켓과 식료품점이 한 곳씩 생겼고, 그럭저럭 경쟁력을 갖추며 영업하고 있다. 의무휴업으로 SSM이 문을 닫는 날이면 손님들로 북적인다.

지난해까지 두 자릿수 출점을 기록하던 대형마트가 올해는 지난달까지 전국 단 한 곳에서도 점포를 새로 내지 못했다.

올해는 국내에 대형마트가 생긴지 21년째. 국내에 400여개 남짓한 대형마트는 연 평균 20개의 매장을 꾸준히 내며 고속성장을 이어갔다. 대형마트 3사의 출점 경쟁이 한창이던 시절 한해 많게는 40여 개씩 점포를 늘리기도 했다. 대형마트 업계는 그러다 지난해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올 상반기에는 단 한곳도 출점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반기 몇 곳의 점포 개점이 예약돼 있긴 하지만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출점이 한 자릿수를 기록할 전망이다.

올해 또한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높다. 대형마트 업계에서는 전통시장 주변 출점 제한과 월 2회 의무휴업 규제 등으로 업종 전체가 어려움에 빠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SSM도 마찬가지 규제를 받았다.

사정은 커피전문점이나 대기업 빵집도 엇비슷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카페베네, 엔제리너스커피 등 대기업 커피전문점들에 동일 브랜드 커피전문점이 존재할 경우 500m 이내 신규 출점을 제한하면서 대형쇼핑몰 등 일부에만 예외로 신규 출점을 허용했다.

이미 대형 상권에 상당수의 점포를 낸 커피전문점들은 사실상 발이 묶인 셈이다. 이에 앞서 대형 제과, 제빵, 치킨, 피자 업체들도 출점 제한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는 3년 만에 대기업 커피전문점과 제과ㆍ제빵, 치킨, 편의점 등에 대한 거리제한 규정을 두는 모범거래기준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적합업종 관련 규제가 여전히 남아 있어 업종별로 규제 해소에 따른 온도차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형마트 3사는 최근 유통산업발전법의 의무휴업 규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대형마트들이 현재 소송 진행 중인 관할 법원에 유통산업발전법의 의무휴업 규정이 기본권을 침해하는 등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한 것이다.

어찌됐건 골목상권 살리기나 경제 민주화 논리로 밀어부쳤던 규제들이 하나둘씩 풀리고 있고 도전받는 셈이다. 공정위의 폐지 결정은 졸속으로 규제를 도입했다는 방증으로 선정 기준 또한 논란이 되고 있다. 회의론과 실효성, 역차별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내수진작과 소비활성화를 주장하면서도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규제를 양산해 기업의 투자활동을 방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규제에는 명과 암이 존재한다. 규제가 능사가 아니듯 무차별적인 규제 해소도 만능은 아니다. 보다 면밀한 제도의 효과 검증과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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