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습격] 참을 忍 (54)

낱말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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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참을 인(忍)자에는 칼날이 들어있을까. 저 들끓는 마음, 저 고통스러운 마음의 꿈틀거림을 외과의사가 메스 들이대듯 잘라버려야 그게 참음이란 말인가. 아니면 마음의 아픔보다 더 독한 아픔으로 마음을 짓눌러야 그게 참음이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아니다. 내가 보기에 참음이란 칼날이 아니라 깨어질듯 덤벼드는 악착같은 독기가 아니라, 봄바람에 휘휘 풀어지는 정신의 속없음 같은 것이다. 아플 수록 더욱 힘차게 껴안는 마음. 그 핏덩이가 가슴에 녹아 안으로 줄줄 흘러도 그걸 껴안고 뒹구는 어미 마음. 그게 참음이다. 참음이란, 참아야할 대상보다 넓고 깊고 커지는 것.
아니다. 아니다. 참음이란 옹졸한 생각, 좁고 미욱한 괴로움이 자기를 벌려 늘이는 자기 열림이다. 툭 틔워 저 고통이 새나가게 해주는 것. 미움도 슬픔도 그리움도 욕망도 다 저 한 줄기 봄바람처럼 새나가게 두는 따뜻한 자기에의 응시같은 것이다. 그 자기 밖에 무슨 참음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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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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