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칼럼] '관피아'는 구르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는다(江流石不轉ㆍ강류석부전).'

조선시대 하급관리인 아전들이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두보의 시 구절이다. 사또는 왔다가 가면 그만이지만, 아전은 바닥 돌처럼 박혀 있다는 뜻으로 가슴에 새겼다는 것이다. 그런 신념으로 아전들은 백성을 수탈하고 검은 배를 채웠다. 제갈량을 흠모해 시를 읊었던 두보가 가슴을 칠 일이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아전의 좌우명은 살아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직 쇄신과 공기관 개혁을 외친다. 철밥통 공무원, 특히 오랜 세파를 견뎌낸 힘 있는 곳의 관료들은 그런 정권 초 깜짝 이벤트에 결코 놀라지 않는다. '강류석부전'을 되뇌며 '우린 정규직, 대통령은 5년 임시직'을 확인한다. 숨을 죽이지만 두 손을 들지는 않는다. 생존을 위해 잠시 고개를 숙일 따름이다.

큰 배가 침몰하며 돌을 때렸다. 희뿌연 부유물 속에서 거대한 바닥 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진 자들의 태만, 무능, 부정부패, 그리고 사적 이익을 좇는 관민유착의 문화가 그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귀환을 앞질러 떠오른 '관피아(官+마피아)'의 맨 얼굴에 국민은 참담했다.

이름은 새롭지만 관피아의 뿌리는 길고도 깊다. 개발연대 이후 금융을 움켜 쥔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 세력이 관료 마피아의 원조다. 얼마 전부터는 모피아에서 분화한 금피아(금융위ㆍ금감원+마피아)가 득세했다. 급기야 세월호 참사에서 해피아(해수부+마피아)까지 실체를 드러냈다. 공직자 패밀리 문화가 특정부처의 문제가 아니며 모든 국가 공조직에서 낙하산과 부패, 관민유착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케 했다. 관피아라는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한국경제의 압축 성장은 관료들에게 빛이자 그늘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고도성장은 한국 관료들의 우수성을 증명했다. 그 과정에서 관료들은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했다. 정부가 경제의 모든 것을 기획하고, 돈줄을 장악했다. 기업은 정부가 그린 밑그림대로 행동할 따름이었다. 정부의 개발계획에 발을 걸치느냐, 정부가 나눠주는 금융을 챙기느냐 여부에 기업의 생존이 갈렸다. 1960~70년대 한국경제에 시장의 기능은 없었다.

경제가 성장하며 정부의 기능과 역할은 점차 민간으로 넘어갔다. 기업과 시장의 무대는 세계로 넓혀졌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어 갔지만, 관료들은 한번 움켜쥔 기득권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 전관예우는 미덕으로 계승됐다. 퇴직 후까지 서로를 챙기며 그들만의 성을 견고하게 쌓았다. 강물은 도도히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았다.

모두가 관피아 척결을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담화를 발표하면서 "민관유착의 고리를 끊어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엔 강돌을 깨트릴 수 있을까. 확신은 이르다. 어설픈 관료개혁은 관피아의 내성만을 키운다는 사실을 숱하게 경험했다. 공직내부의 자성과 의식 변화가 없는 타율적 개혁은 한계가 있다. '퇴직 후의 편안한 자리'를 내놓는 방책을 스스로 만들어 낼까. 공복의 자긍심보다 '아전의 신념'을 우선하고, '에쿠스는 타야 한다'는 고위 퇴직자의 허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관피아는 불사조처럼 살아남을 것이다.

관피아를 척결하면, 낙하산과 부정부패는 과연 이땅에서 없어질까. 빈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또 다른 무리가 있다. 물먹은 정치인, 대선캠프 출신, 권력을 기웃대는 폴리페서…. 권력에 기생하는 '권(權)피아'다. 낙하산 근절을 외친 박근혜정부에서 낙하산이 여전한 것은 관피아에 권피아까지 가세한 때문이다. 공직자가 권력 사유화를 당연시하고, 권력에 빌붙은 권피아가 활개 치는 한, 공직개혁은 멀고 세월호 참사로증폭된 국민의 정부 불신은 줄지 않을 것이다.





박명훈 주필 pm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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