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렸던 李, 줄이는 黃…KT 생존경영 향방은

-이석채 회장 때 29개서 52개로 늘어난 계열사 줄줄이 적자
-황창규 회장, 지원인력 대폭 축소·현장경험 풍부한 내부출신 인사 중용
-'통신 귀환' 외치며 혹독한 다이어트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1월 27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1월 27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30 대 53". 2009년과 2014년 KT그룹의 법인숫자다. KT 모회사를 제외하면 계열사가 5년 새 23개(29→52)가 늘었다. KT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지 3주째 접어든 황창규 회장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전임 회장이 '탈통신'을 외치며 벌려놓은 계열사들을 '역시 통신'을 외치는 그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문어발식 확장이 중소기업 침해라는 시각도 있어 실적이 좋지 않은 일부 계열사들을 조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8일 본지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KT그룹 현황을 파악한 결과, 올해 2월 기준으로 KT 계열사 수는 56개에 달했다. 이중 서류상 법인을 제외하면 공정거래법상 KT 계열사로 분류되는 수는 52개다. 여기에 KT를 포함하면 KT그룹에는 총 53개의 회사가 있는 것이다. 이석채 전 회장이 취임한 2009년 3월 당시 계열사 수가 29개였던 것에 비하면 그새 계열사가 23개가 늘었다. 전체 계열사 중에 유무선 사업분야와 연관성이 높은 계열사는 KT파워텔(기업용 무선통신), KT M&S(통신기기 유통), KT스카이라이프(위성방송/IPTV), KTDS(IT서비스) 등 20개로 분류된다. 반면 연관성이 떨어지는 비통신 계열사는 BC카드(금융), KT에스테이트(부동산), KT렌탈(차량ㆍ사무기기 임대), 나스미디어(광고) 등 32개사다.

계열사 52곳 중 경영실적을 공시한 42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2012년 기준 연간 순손실을 기록한 곳은 15곳으로, 총 적자 규모는 1388억6850만원에 달했다. 이는 KT의 2012년 별도기준 영업익 1조7467억원의 13%에 해당한다. 같은해 BC카드에서 발생한 영업익 1385억원을 고스란히 날린 것과 같다. 손실이 가장 큰 곳은 단말기유통사업체인 KT M&S로 749억1787만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으며, KTH도 74억원의 적자를 냈다. 비통신 계열사의 손실액도 만만치 않아 지하철광고사업자 스마트채널은 156억원, KT에스테이트는 151억원의 영업손실을 남겼다. 시스템관리나 SW개발업체인 KT클라우드웨어, KTSB데이터서비스, 센티오스, KT OIC, KT넥스알, 엔써즈 등도 10~30억원대의 손실을 기록했다.

KT가 계열사를 급격히 늘린 것은 이석채 전 회장이 '탈통신'을 내세운 결과다. 2010년 스카이라이프와 금호렌터카, 2011년 BC카드를 인수하는 등 다른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KT 사업을 분리하는 작업도 이뤄졌다. 2010년에는 부동산개발회사 KT에스테이트, 이듬해 부동산자산관리회사 KT AMC를 설립했고, 2012년에는 위성임대사업을 위해 KT샛을 세웠다. KT렌탈은 금호렌터카 사업을 인수한 뒤 KT렌탈오토케어와 KT오토리스리스를 별도로 분할했다. 그러나 덩치는 커졌지만 새로운 먹거리 창출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BC카드 등 금융부문 실적이 통신분야의 손실을 메웠지만 너무 커진 비통신 영역은 '과유불급'이었다. 렌터카는 중소기업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결국 5년이 지난 'KT 황창규호'는 방향을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특히 황 회장이 '다시 통신'을 강조하고 있어 어느 식이든 계열사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황 회장은 공식 취임무대인 주주총회에서 '통신 대표기업 1등'을 목표로 제시한 데 이어 취임 첫날 첫 일정으로 서울 양재동 이노베이션센터를 방문해 무선네트워크 기술을 점검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후 조직개편에서도 지원인력을 대폭 축소하고 통신사업 현장영업력 강화에 나서기 위해 현장경험이 풍부한 KT 내부출신 인사들을 중용했다.

지난 4일에는 10여개 계열사 대표들을 물갈이했다. 사실상 계열사 구조조정의 신호탄인 것이다. 계열사간 기능이 겹치거나 성장 가능성이 낮은 조직은 어느 식으로든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번에 대표 교체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통신부문과 관련이 없는 계열사들이 정리 1순위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양승우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시너지를 얼마나 냈느냐는 측면에서 BC카드는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면서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정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양 애널리스트는 "나스미디어처럼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내는 계열사도 있음을 감안하면 앞으로 이뤄질 조직 개편은 방만한 비통신 분야를 대폭 줄이고 옥석을 가려내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친 문어발식 확장으로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에는 알뜰폰 시장 진출을 검토 중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업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방송 송출 사업과 관련해서도 대ㆍ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저버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은 "통신이란 본업에 제대로 임한다는 전제 아래 작은 계열사라도 잠재력과 가치를 따져 보면서 투자에 임하고 그렇지 않다면 정리하는 게 옳다"며 "특히 중소기업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영식 기자 gra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