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우리는 왜 막장드라마에 열광하는가 ?"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어느 날부터 '막장드라마'라는 신조어가 등장해 흔히 쓰인다. 막장은 본래 석탄 등을 캐는 광업에서 쓰이는 용어로 광산의 제일 안쪽 부분을 말한다. 이곳에는 통로가 없어 노련한 광부조차 들어가기를 꺼린다. 대신 생명을 걸어야하는 만큼 위험해 가장 높은 수당이 주어진다. 그런데 '막장'이 아무 연관도 없는 드라마에 붙어 온갖 논란거리를 제공한다. 막장 드라마는 인물관계, 상황 설정, 장면 등이 비현실적이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해 나가는 드라마다.

막장드라마의 원조는 '오이디푸스 신화'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출생의 비밀, 근친상간, 존속 살해 등 무시무시한 스토리가 골격을 이룬다. 흔히 막장드라마는 불륜, 강간, 폭력,납치, 감금, 인신 구속, 살인 등 자극적인 소재를 빈번히 다룬다. 이런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저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희한한 상황이 다 벌어진다. 그러나 막장드라마는 시청자의 잠재된 욕망을 자극하거나 편승하는 게 보통이다. 어떤 경우 시청자들은 추악한 현실(드라마 내용)에서 자신의 안전함을 확인하고 위안받기도 한다. 작년 봄부터 연말까지 방영된 '오로라공주'는 방영기간 내내 논란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막장드라마다. 시청자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오로라공주의 막장스러움을 욕하며 심지어는 드라마 작가 퇴출운동마저 벌였다. 헌데 오로라공주는 시청률 7%에서 시작해 20%를 넘겼다.욕을 퍼부을수록 시청률이 오르는 기현상 때문에 정작 당혹한 것은 시청자들이다.

이에 시청자들은 대본을 맡은 특정 작가를 지목해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드라마 생산구조를 살펴 보면 작가도 막장드라마의 희생자임을 알 수 있다. 그 배후에는 방송국이 있다. 드라마 방영 및 내용, 작가 선정 등의 결정은 방송국의 철저한 시청률 계산에서 이뤄진다. 방송국 경영자들은 드라마 제작에 있어 '갑중의 갑'이다. 작가가 자신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작품을 쓴다기 보다는 전적으로 방송국의 요구에 의해 생산한다는 것이 정확하다. 방송국에 철저히 종속된 작가는 방송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맞춰 대본을 쓸 수밖에 없다.

시청률이 올라가면 비록 욕을 먹을지 언정 방송국은 막대한 광고수익을 이끌어낸다. 오로라공주 또한 마찬가지다. 논란이 일 때마다 사람들은 왜 그런가 싶어 드라마에 들어가 보고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말초적인 내용에 빠져들기 일쑤다. 그야말로 막장 논란은 노이즈 마케팅과 다름 없다. 진작부터 작정하고 논란을 야기하는 드라마도 많다. 막장드라마가 만들어지는 데는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진 방송국과 시청자의 수용 여부에 달려 있다. 결국 건전한 문화 소비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방송국의 전략에 휘둘린 시청자도 희생자인 셈이다.이같이 막장드라마에 열광하는 사회와 시청자의 은밀한 욕망을 분석한 책이 나왔다.
최성락(동양대 경영학부 교수)·윤수경(삼성경제연구원 연구원)이 공동 저술한 "우리는 왜 막장드라마에 열광하는가 ?"는 평소 우리가 한번쯤 제기했을 법한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이 책은 작년에 논란이 일었던 TV 드라마 '오로라공주'을 통해 왜 욕을 먹고도 높은 시청률을 구가했는지, 오로라공주를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오로라공주가 반영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특징적인 면은 무엇인지를 집중 분석한다.

저자는 "막장드라마가 더 이상 한국에서 방영되지 않으려면 먼저 시청자가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훈훈한 가족 드라마, 건전한 상식이 강조된 드라마가 많이 방영되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드라마를 선택할 줄 아는 안목이 요구된다"고 설명한다.
<최성락·윤수경 지음/프로방스 출간/값 1만3800원>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