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사진=정재훈 기자]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응답하라 1997’에 이어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시청률은 어지간한 지상파 채널을 뺨친다. 케이블 채널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10% 안팎이다.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이들은 이제 40대다. 누구에게나 피 끓는 청춘은 있는 법. 그래서 모두가 그때를 추억한다.
1970년대 초반 20살 안팎의 청춘들은 이제 60대 초·중반의 할아버지가 됐다. 손주 자랑을 할 나이의 그들도 다르지 않다. 지난 20일 저녁 서울 평창동에 위치한 차범근 전 프로축구 수원 삼성 감독의 자택은 한바탕 북적였다. 차 전 감독의 환갑을 계기로 1972년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회포를 풀었다. 1972년이면 차 전 감독이 고려대학교 1학년으로 우리나라 나이로 딱 스무 살 때다. 이들은 그날 ‘응답하라 1972’를 외쳤을 터이다.
1972년 그해, 축구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차 전 감독은 그해 4월 방콕에서 열린 제14회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이어 5월 같은 곳에서 벌어진 제5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만 19살의 신예가 시쳇말로 ‘두 탕’을 뛴 것이다. 한국은 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이스라엘에 0대 1,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이란에 연장 접전 끝에 1대 2로 져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차 전 감독은 경신고 3학년 때인 1971년 일본에서 열린 청소년선수권대회도 뛰었다. 이 대회에서도 한국은 이스라엘에 0대 1로 져 준우승했다. 당시 차 전 감독은 일본과 치른 준결승에서 코뼈를 크게 다쳤다. 부상을 치료한 병원이 세브란스였던 인연으로 차 전 감독은 연세대로 진학할 뻔했다. 아무튼 그 무렵 아시아연맹에서 활동하던 이스라엘은 1964년~1966년 3연속 우승을 비롯해 1972년까지 통산 6회 우승으로 위세를 떨쳤다.태국에서 돌아온 대표팀은 5월 25일 서울운동장에서 코벤트리시티 클럽과 친선경기를 치러 0 대3으로 완패했다. 이어 6월 2일 같은 곳에서 열린 펠레가 이끄는 산토스 FC와의 친선경기에서도 2대 3으로 졌다. 50대 후반 이상의 올드 축구팬이라면 당시 이회택과 차범근의 골을 기억할 것이다. 경기장을 직접 찾은 팬들은 육상 트랙까지 밀고 들어온 구름 관중도 머릿속에 생생할 것이다.
차범근[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대표팀은 7월 쿠알라룸프르에서 열린 제16회 메르데카배대회에서 말레이시아를 2대 1로 꺾고 우승했다. 차범근이 하프라인에서부터 오른쪽 터치라인을 타고 질풍 같은 드리블 끝에 넣은 결승골은 올드 팬들에게 즐거운 기억이다. 차 전 감독은 이 대회에서 박이천(5골) 다음으로 많은 4골을 넣었다.
대표팀은 9월 14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제1회 한일정기전에선 2대 2로 비겼다. 도쿄에서 돌아온 대표팀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박대통령배아시아대회에 나섰다. 준결승에서 버마(미얀마)에 0대 1로 졌지만 3위 결정전에선 말레이시아를 1대 0으로 물리쳤다.그해 정신없이 국내외를 오간 대표 선수는 막내 차범근만이 아니었다.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이세연, 권이운, 김호, 김호곤, 한상기, 김경중, 노흥섭, 고재욱, 이차만, 박영태, 황재만, 박이천, 박수덕, 최상철, 임태주, 정호선, 김인권, 김진국, 이회택 등이 비슷한 처지였다. 20일 저녁 차 전 감독 집에 모인 이들이다.
그런데 차 전 감독은 박대통령배대회가 그해 경기 일정의 끝이 아니었다. 연세대와의 정기전이 남아있었다.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 속에서 빨간 줄무늬 유니폼을 택한 차 전 감독에겐 어쩌면 그해 가장 중요한 경기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10월 유신’이 있었던 그해 연고 정기전은 ‘학원 사태’로 열리지 않았다. 그 무렵에는 연고 정기전 출전을 위해 주요 국제대회에 출참하기까지 했으니 두 학교의 경쟁 관계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터이다. 거의 연세대로 기울었다가 고려대로 방향을 튼 차 전 감독은 2학년 때인 1973년 정기전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고려대의 2대 1 승리를 견인했다. 고려대=차범근, 연세대=허정무의 등식이 성립한 건 1974년 뒤였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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