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 김남조의 '너를 위하여'

나의 밤 기도는/길고/한가지 말만 되풀이한다/가만히 눈뜨는 건/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속속들이 채워 넘친/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이적지 못 가져 본/너그러운 사랑너를 위하여/나 살거니/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먼 하늘에/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오직 너를 위하여/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기쁨이 있단다/나의 사람아

김남조의 '너를 위하여' 
■ 부산에 살 때 한 소녀의 노트에 귀여운 글씨로 적혀 있던 이 시를, 먼 고개 넘어와 문득 다시 읽는다.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눈부신 마음이던 때, 사랑은 그토록 빛나는 황홀이었지만 그것은 영원히 지닐 수 없는 도취와 욕망이었을 뿐이었다. 나 또한 이적지 못 가져본 너그러운 사랑을, 문득 이마를 치며 생각한다. 그때 소녀의 입에서 들려나온 아름다운 구절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를 이제서야 받아 중얼거리며, 지나와버린 그 자리에 아직도 머물러 있을 사랑을 생각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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