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말이 되는 이야기 ②

마군을 그간 말과 연관 지어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오리부장의 사건은 그를 완전히 말로 낙인찍는 계기가 되었다. 하필 성도 마(馬)씨가 아닌가. 더구나 그의 고향은 마산(馬山)! 사는 곳은 마두역 근처. 신문제작 일을 마치면 동료들끼리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부서에선 관행처럼 되어있다. 여섯시쯤 되면 삼삼오오 어울려 식사를 하러 간다. 어느 날 마군이 선배 최차장과 여기자 윤에게 같이 식사를 가자고 말했다. 그때 최씨가 문득 이렇게 대꾸한다. "말밥이지." 최씨의 이 말은 유행어의 차용일 뿐이었다. <당연>이 <당근>이 되고 <당근>이 말이 먹는 밥이라 해서 <말밥>으로 되는 과정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썰렁개그다. 그런데 마군에게 적용되자 생생한 은유가 된다. 말밥이라니…. 마군의 얼굴이 씰룩이며 구겨졌다. 박군은 애써 그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딴소리를 한다. "김선배도 같이 가야 하는데…." 그러자 윤기자가 슬쩍 거든다. "그래, 그 김기자는 애마(愛馬)부인이니까 같이 가야지."

이튿날 그는 다시 최차장에게 식사를 가자고 말했다. '말밥이지'라는 말이 나올까봐 마군은 콩글리시로 다시 묻는다. "Can you please have a dinner with me?" 최차장의 대답은 이거였다. "Of horse!" 마군이 부아가 나서 소리쳤다. "이제 선배하곤 절대로 밥 같이 안먹을 거유." 최차장의 천연덕스런 대답. "그래, 말은 여물을 먹어야지."몇 번의 우스개들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자 말에 관한 상상력들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마음(馬音)을 곱게 써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주마간산이잖아?" "제목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네." "말귀가 왜 그리 어둡나?" "말문이 막히네." "잘 하고는 있지만 주마가편을." 이런 '말'장난이 기승을 부리자 동료 하나가 중얼거렸다. "어찌 모든 상상력들이 한 가지로 귀결되남?"

그러자 한 동료. "모든 길은 로마(馬)로 통하니까…." 다른 동료가 받았다. "그것이 우리의 화두(話頭-말머리) 아니겠어?"

이우철 기자는 시가 한편 생각난다고 했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곁에 있던 후배도 거들었다. 저는 선배를 보면 시인이 생각나요. 청마(靑馬) 유치환. 언젠가 신문에서 인터넷 댓글 사건이 터졌을 때 한 동료가 물었다. "제수씨 괜찮지? 조심해. 요즘 마녀(馬女)사냥 한다더라."심형래의 <용가리>가 서울에서 쉬리의 관객동원을 뛰어넘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우리의 마군이 약간 흥분했다. "영화를, 우리 거니까 봐주는 식으로 흥행을 만들어내는 건 말도 안돼요. 알맹이가 있어야지." 이때 이우철이 거든다. "어이, 남의 조상 가지고 용쓸 거 뭐 있냐? 자네 조상으로 승부해봐." "우리 조상?" "그래애… 말똥가리." 낄낄거리며 웃느라 엘리베이터가 흔들리자 한 동료는 말했다. "이놈의 엘리베이터가 인마살상(人馬殺傷)할 뻔 했네."

회사의 공지사항을 담은 문서가 가끔 돌아온다. 우린 그걸 회람이라고 부른다. 휴가 날짜를 조정하라는 회람을 들고 마기자가 소리친다. "공지 안보신 분 안계세요?" 이때 옆에서 툭 내뱉는다. "누가 끝말잇기 좀 해줘."

엉터리 비약도 활개를 쳤다. "오늘 그 제목 잘 달았지만 읍참마속(泣斬馬謖)해야겠어." "으이구, 마속은 사람 이름이우. 마군이 술을 먹으면 무조건 말술." 잔을 내려놓으면 말했다. "대동강수 음마무(飮馬無)." 술을 사양하면 말했다. "말을 물가까지는 데려올 수 있지만 먹일 수야 없지." 마군이 그로기 상태가 되었을 땐 "오늘 대마(大馬)를 잡았다!" "정말 한 선량한 인간에게 마구잡이로 이럴 거요?" 그러자 그동안 잠자코 있었던 이영수 차장이 말한다. "마구(馬狗)잡이? 요즘 복날엔 개말고 말도 잡나?"

아무도 모른다. 지금 연신 말꼬리를 잡히며 괴로워하는 마군이 진짜 말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절대로 마각(馬脚)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하느님의 응징을 받아 마사회에서 방금 탈주한 말 한 마리를 놓고 벌이는 우리 부서의 최근의 이지메는 농담이 자아낼 수 있는 아주 심각한 결과를 보여주는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나저나 언론은 복마전(伏'馬'殿)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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